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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테러戰 정신 팔다 중남미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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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테러戰 정신 팔다 중남미 놓쳤다

입력
2006.04.11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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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급속히 떨어진 것은 남미를 단순한 돈줄로만 인식하며 외교적 무례를 범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영국 BBC 방송은 9일 치러진 페루 대선에서 민족주의 중도좌파 성향의 오얀타 우말라 후보가 선두를 달리는 것과 관련,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치르는 동안 남미와의 관계는 최악의 상태로 곪아 버렸다”고 10일 보도했다.

1823년 제임스 먼로 미국 대통령이 유럽 국가들에게 남미에서 손을 떼라고 요구한 ‘먼로독트린’을 발표한 이후 미국 역대 대통령은 남미를 외교 정책의 최우선 현안으로 삼아왔다.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2001년 1기 취임 직후 “중남미가 미국 외교정책의 우선순위가 될 것”이라고 천명했으며 9ㆍ11 테러가 발발하기 1주일 전까지만 해도 멕시코가 가장 중요한 나라라고 선언했다.

이처럼 미국이 중시했던 남미에서 부시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브라질 등 5개국에서 반미 좌파 정권이 들어섰고, 그 전에 집권한 쿠바와 베네수엘라까지 합치면 7개국이 좌파 정권이다. 대선이 치러졌으나 과반 득표자가 없어 다음달 말이나 6월초 결선투표가 실시될 페루에서도 우말라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되고 있다.

7월 멕시코 대선에선 중도좌파인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11월 니카라과 대선에선 다니엘 오르테가가 권좌 복귀를 노리고 있다. 미국 정부가 적대국인 이란에 무기를 팔고 그 대금으로 콘트라반군을 지원하면서까지 제거하려 했던 오르테가가 복귀한다면 이는 미국으로서는 비극이다. 부시 대통령이 펼친 외교정책이 총체적으로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예이다.

미국과 남미의 관계가 최악의 상황을 초래한 것은 무엇보다 ‘워싱턴의 지도력 실패’라는 지적이 많다. BBC는 “9ㆍ11 이후 미국의 정책이 ‘테러와의 전쟁’에 집착하면서 중남미는 관심 밖으로 밀려났고, 전쟁 자금을 자원이 많은 중남미에서 찾으려 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외교전문지인 ‘포린 어페어스’는 최근 “부시가 치른 두번의 전쟁에서 보여준 일방주의가 중남미에서 커다란 반감을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했다.

중남미 좌파 정권의 경우 쿠바 등을 제외하고는 빨간색의 공산주의라기 보다는 분홍색의 실용주의적 좌파 정도에 불과하다고 안이하게 생각한 것도 위기를 키웠다는 게 이 잡지의 분석이다.

80년대 후반 대대적인 경제 지원을 했던 것과는 달리 최근 10년 새 아예 지원을 끊고 반 이민정책, 엄격한 지적재산권 요구, 높은 관세, 설탕 및 면화 등에 대한 쿼터제한 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것도 중남미 국가들의 분노를 산 또 다른 원인이다.

쿠바와 아이티를 제외하고 원자재값 상승 등으로 자원 부국인 중남미 국가 대분분의 경제가 활성화했다. 이들이 경제적 여유를 바탕으로 고유 문화를 찾으려는 욕구가 커지면서 미국 의존도가 줄고 반미 성향이 커졌다고 BBC는 전했다.

황양준기자 naig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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