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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명 벗은 윤이상' 남북이 함께 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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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명 벗은 윤이상' 남북이 함께 기린다

입력
2006.04.11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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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에서 남북한이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을 기리는 음악회를 연다.

윤이상평화재단(이사장 박재규)은 재단 창립 1주년을 맞아 29일 오후 6시30분 금강산 문화회관에서 남북이 공동으로 윤이상 음악회를 갖기로 했다고 밝혔다. 남쪽에서는 윤이상을 기려 그의 고향 경남 통영에서 열리는 통영국제음악제의 상주 단체인 TIMF앙상블과 국립국악원 연주단이 올라가고, 북에서는 평양의 윤이상관현악단이 참여한다.

평양 윤이상관현악단은 1984년 창설된 윤이상음악연구소 산하의 2관 편성 오케스트라로, 윤이상이 생전에 북한을 오가며 직접 지도했다. 이 악단은 윤이상 작품 등 현대음악 뿐 아니라 고전음악도 꾸준히 연주하고 있다. 이 악단 멤버들로 이뤄진 윤이상앙상블은 첫 해외연주로 1999년 독일을 순회해 호평을 받았고, 당시 현대음악 레이블로 유명한 베르고에서 윤이상 작품을 녹음해 음반도 냈다.

윤이상음악연구소는 관현악단 외에 윤이상박물관, 음악연구실, 작곡연구실, 잡지편집부를 거느리고 있으며 600석의 연주홀도 갖고 있다. 이 연구소는 음악회와 세미나 외에 삼국ㆍ고려ㆍ조선시대의 전통악보 200여 편을 발굴 정리하는 등 민족음악의 유산을 보전하고 연구하는 데도 힘쓰고 있다.

윤이상은 세계적 작곡가로 해외에서 명성을 떨쳤지만 1967년 이른바 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돼 2년여 동안 옥고를 치르고 독일로 간 뒤 다시는 조국 땅을 밟지 못했다. 분단의 희생양으로서 남북이 갈라진 현실을 아파한 그는 음악으로 통일에 기여하고 싶어했고, 그 열망으로 1990년 10월과 12월 평양과 서울을 오가며 열린 범민족 통일음악회를 직접 나서 성사시키기도 했다. 그는 동베를린 사건 이후 남쪽으로 못오게 되자 조국의 다른 절반인 북한을 자주 왕래했다. 북한은 1980년대부터 그의 작품을 꾸준히 연주했으며, 그의 이름으로 연구소와 음악제를 여는 등 그를 높이 평가했다.

올해 1월 동베를린 사건이 간첩단 사건으로 확대 포장됐다는 국가정보원 진실위원회의 발표로 윤이상은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윤이상평화재단은 이를 환영하면서도 완전한 명예회복을 위한 재심과 사면복권,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한편 금강산 음악회에는 윤이상의 부인 이수자씨도 참석해 자신의 입장과 소감을 밝힐 예정이다. 이씨는 남편의 명예가 완전히 회복되기 전에는 한국에 들어올 수 없다며 줄곧 해외에 머물면서 베를린의 집과 평양을 오가며 살고 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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