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이 2003년 7월 금융감독원에 송부한 ‘의문의 팩스 5장’에 대해 외환은행 최고경영진이 미리 알고 있었다는 정황이 검찰에 의해 확인되면서 외환은행 헐값 매각의혹의 실체가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관건은 외환은행 경영진이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넘기기 위해 조직적으로 BIS 비율을 ‘조작’했는지, 아니면 당국이 외환은행 매각이라는 정책적 판단을 내리면서, 재량권 범위 내에서 ‘조정’을 했는지 여부이다.
'론스타-이강원-전용준' 가능성
이 전 행장이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팔기 위해 당시 전용준 외환은행 매각 실무팀장(당시 부장)에게 지시해 BIS비율에 손을 댔을 가능성이다. 이 경우 매각 전 과정을 이 전 행장이 주도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론스타는 물론, 외환은행 매각주간사였던 모건스탠리를 끌어들인 장본인이 바로 이 전 행장이다. 이 전 행장은 2002년 10월부터 론스타와 접촉하며 외환은행의 정보를 제공해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론스타와 가격 협상을 주도한 모건스탠리는 외환은행 이사회에서 헐값 매각을 했다며 이사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전 행장이 론스타로의 매각 이후 거액의 퇴직금과 자문료 등을 받은 것도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이 전 행장은 감사원 조사에서 “외자유치를 백방으로 추진해 왔으나, 정부가 매각 결정을 내려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론스타는 2002년 10월부터 경영권에 관심이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이 전 행장은 론스타로의 매각 과정에서 대주주 자격문제가 마지막 걸림돌이 되자, 고교 후배이자 매각 실무를 담당했던 당시 전용준 부장에게 BIS 비율을 손 볼 것을 지시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비밀회의-이강원-전용준' 가능성
당시 7월15일 정부 당국자들과 이 전 행장 등 외환은행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던 비밀회의에서 외환은행 매각이라는 ‘정책적 판단’에 의해 BIS비율을 조정하는 방안이 논의됐을 가능성도 있다. 이날 회의는 론스타에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을 부여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논의됐던 방안이 바로 ▦1안, ‘론스타는 금융기관이다 ▦2안, ‘은행법이 인정하는 예외기준에 해당된다’ ▦3안, ‘ABN암로와 합작투자하겠다’ ▦4안 ‘도쿄스타은행과 합작투자하겠다’ 등이었다.
그러나 3안, 4안에 대해 론스타가 거부해 현실성이 없다는 판단이 내려지면서 2안으로 결론 난 것. 2안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외환은행의 BIS비율이 8% 미만이어야 했고, 이로 인해 당국자들이 BIS비율을 낮게 책정할 것을 지시했을 수도 있다는 것.
그러나 이날 회의에서 외환은행이 BIS비율을 이미 5.4%라고 제출을 했기 때문에 이를 확인하고 2안을 선택한 것인지, 2안을 선택하고 BIS의 고의적인 하락이 있었는지는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또 당국이 BIS비율을 낮췄어도 금품 수수가 없었다면 당국자들의 책임 추궁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사진=류효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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