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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강금실의 보랏빛 모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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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강금실의 보랏빛 모호성

입력
2006.04.11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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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실 전 장관이 보라색으로 온통 치장하고 서울시장 선거에 나섰다. 가장 좋아하는 색깔이라는 주변의 전언에 덧붙여 본인은 빨강과 파랑을 섞은 보라색처럼 새로운 통합의 흐름을 추구하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객관적으로는 보라색의 고상하고 사치한 이미지를 노린 전략이라는 단순한 풀이와, 원색의 감성과 사고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하고 이지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려는 계산이라는 제법 심오한 해석이 엇갈린다.

어쨌든 보라색 전략, 이른바 퍼플오션(Purple Ocean) 캠페인은 일단 유권자들의 감성에 어필한 것으로 보인다. 사치한 보라색은 어울리는 이가 흔치 않기에 특히 여인들이 선망한다고 한다. 첫 여성 법무부장관의 당찬 면모에 강효리로 불린 매력까지 지닌 이미지를 한껏 높이는 효과를 거뒀을 법하다. 비록 막연하고 오래가지 않더라도, 지루할 정도로 출마 선언을 미루며 노렸을 화려한 정치무대 데뷔에 상징 역할을 한 것만으로도 성공을 거둔 셈이다.

●성형수술 닮은 '경계 허물기'

그러나 보라색 치장을 출마 선언에서 내건 구호나 공약과 연결해 보면, 빨강과 파랑의 경계 아닌 양극단에 넓게 걸친 이중성과 취약함을 보랏빛 모호성으로 가린 느낌이다. 그는 경제 사회 지역 문화적 벽을 넘어서는 경계 허물기를 표방했다. 고상한 뜻이긴 하나 “강북을 발전시키고, 강남을 아름다운 부촌으로 보존하겠다”는 말은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아무리 화합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라도 ‘아름다운 부촌’은 지나친 아부로 들린다. 그의 정치 기반인 집권세력이 지금껏 취한 자세에서 멀리 벗어난 것이 오히려 진정성을 의심하게 한다.

그는 보라색 전략을 청계천에서 이어갔다. 열린우리당과 지지세력이 끈질기게 시비하고 폄하하던 청계천 복원을 평가한 것은 다수 유권자의 이성적 판단에 다가간 것이다. 현실성이 부족한 자연하천 복원주장을 빼놓지 않고 언급한 것은 체면치레로 볼만 하다. 전태일 광장에서 시민들과 어울린 것은 이념적 정체성을 확인시키려는 행보인 점에서 자연스럽다. 다만 하루 전 사치한 무대 출연과는 그리 잘 어울리지 않는다. 전태일 추모동판에는 ‘낮은 곳에서 아픈 사람과 항상 함께 하는 사람’이라는 글이 강금실의 이름으로 새겨져 있다.

대중적 인기를 공연히 시샘하거나 큰 뜻을 애써 시비할 마음은 없다. 그러나 그의 진면목이 무엇이든 간에 좌와 우의 극단에 두발을 나눠 딛고 선 듯한 자세는 어색하다. 서구정치에서 이념과 계층의 경계를 뛰어넘는 제3의 길이 유행했지만, 중간지대를 아우르는 모색일 뿐 애초 조화할 수 없는 극단을 잇는 시도는 아니다.

고대부터 제왕과 상류계급의 특권과 호사를 상징한 보라색을 앞세워 유권자의 사치한 감성에 어필하는 동시에 사회 낮은 곳의 아픔을 돌보는 집단적 정체성을 부각시키려는 것은 정말 사치한 발상이다. 얼굴 부위마다 아름다운 모델은 모두 골라 본색을 뜯어고치는 성형수술에 비유하면 지나친 것일까.

선거에 나서는 후보는 어차피 성형미인이라고 체념할 수 있다. 그러나 그토록 강파른 이념과 논리를 앞세워 소모적 갈등과 대립을 초래한 집권세력의 대표 미인, 얼짱이 뿌리와 소속을 알 수 없는 성형 얼굴과 현란한 색깔 캠페인으로 유권자를 현혹하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이런 전략이 지방선거를 넘어 다음 대선까지 이어질 것을 생각하면 지레 분노하는 국민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이념과 세력을 지지하든 간에, 국민을 속이는 정치에 물색없이 영합하거나 으레 그러려니 방관해서는 국민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경험을 되풀이하기 십상이다.

●본색으로 승부해야 정치발전

유권자의 지혜로운 분별을 당부하기에 앞서, 강금실 전 장관 스스로 보랏빛 모호성에서 벗어나기 바란다. 그가 코미디든 비극이든 그릇된 정치를 뛰어넘으려는 진정한 의지와 비전을 갖고 있다면, 치장없는 본색을 그대로 드러내고 승부하는 자세부터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코미디야, 코미디’라는 조롱을 고스란히 되돌려 받을 수 있다.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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