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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검찰의 밥짓기 믿고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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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검찰의 밥짓기 믿고 싶지만…

입력
2006.04.1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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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다 되어 가고 있다. 뜬금없이 무슨 소리인가. 현대차 사태가 점점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말이다. 대검 수사기획관의 비유를 빌리자면 벼를 수확해서 밥을 짓는데 쌀도 다 씻었고, 밥물도 부었고, 불도 충분히 땠다. 밥짓는 냄새도 솔솔 난다. 이제 뜸만 제대로 들이면 된다. 과연 검찰은 이번에는 밥을 제대로 지을 수 있을까?

필자가 걱정하는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삼성 경우를 보자. X 파일 녹음테이프에서 총수의 머슴들이 검찰을 거론하며 떡값 돌리는 얘기를 했는데도 요지부동이었다.

총수가 국회 출석 요구도 무시하고 외국에 체류중일 때에도 “돌아와서 수사에 협조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검찰은 가만히 있었다. “수사를 오래 할수록 혐의가 많아질 것”이라는 충고도 없었다. 그리고 결국 조용하게 덮어 버렸다. 상황종료 후 돌아온 총수는 이미 낸 돈, 앞으로 내야 할 돈 다시 포장해서 ‘사회환원’했다. 마치 탈세한 사람이 방위성금 내고 빠져나오듯이.

물론 이번에는 무엇인가 다르다는 느낌도 든다. 전광석화 같은 압수수색이 있었고, 아들에 대한 압박도 있었다. ‘부자 동시 사법처리’라는 수사의지도 비쳤다.

그러나 이것만 보고 검찰이 바뀌었다고 보기는 이르다. 잘 가다가 삼천포로 빠진 예가 충분하게 많기 때문이다. 전광석화 같은 압수수색은 SK 그룹 때도 있었다. 그러나 총수의 아들은 아직도 건재하다. 아버지와 아들뿐만 아니라 삼촌까지 얽히고설켰던 두산 그룹 문제도 단출하게 끝나고 말았다. 이런 것만 보면 검찰은 아직도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 현대차의 문제는 우리나라 재벌 총수들이 아직까지 고치지 못한 악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대표적 예다. 회사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회사를 제물로 삼았다. 회사 돈을 노골적으로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하기도 했고, 회사의 사업기회를 가로채 자신들이 설립한 회사로 빼돌려 개인 주머니를 불렸다. 이런 행동은 회사 경영자가 당연히 부담해야 할 충실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물론 충실의무 위반은 검찰이 상관할 영역이 아니다.

그런데 남의 돈을 빼돌리는 것은 형벌로서 처벌해야 할 사회적 악덕이다. 바로 이점 때문에 검찰이 등장한다. 그런데 때로 검찰은 돈 빼돌리기가 사회적 악덕임을 똑바로 깨닫지 못한 채 “빼돌린 돈을 사회환원하면 다 되는 것 아니냐”라든지 “경제가 어려우니까 무조건 봐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이상한 논리의 포로가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안 걸리면 괜찮고, 걸리면 사회환원하면 된다’는 관행이 있으면 경영자는 언제나 도둑질하게 마련이고, ‘경제가 어려우면 봐준다’는 논리가 통하면 경영자는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도둑질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환원과 무관하게, 또 경기상황과 무관하게 검찰은 동일한 잣대를 엄정하게 들이대야 한다.

물론 모든 부담을 검찰에만 전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특히 정치권은 재벌의 일탈적 행위를 처벌하지 않고 이를 음성적 정치자금의 모금기회로 탈바꿈하려는 유혹을 버려야 한다. 정치권의 결단이 없는 한 검찰의 ‘밥짓기’도 설은 밥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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