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이후 1960년대 후반까지 미국이 제공한 각종 원조물자 포장에 악수하는 그림이 선명했다. 동네에서, 학교에서 배급하는 밀가루 옥수수가루 분유 등은 모두 이 포장 속에서 나왔다. 태극기와 성조기 위에 인쇄된 그림은 굶주림에 지친 한국민에게 특별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튼실해 보이는 두 손이 굳게 맞잡은 이 그림은 대한(對韓) 원조업무를 맡았던 미 해외경제협력처(USOM)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미국의 원조물자가 눈물나도록 고맙게 여겨졌듯 원조물자와 함께 한국민에게 다가온 악수하는 그림은 양국 우호관계를 대변하는 듯했다.
■ 악수는 천상의 신이 지상의 지배자에게 권력을 수여하는 제스처라는 설이 있다. 기원전 1800년경 바빌로니아에서는 새해 축제 때 왕이 최고신 말두크 상의 손을 잡았는데, 이는 곧 말두크의 통치권을 왕에게 내린다는 것을 의미했다고 한다. 이집트 상형문자에서 손을 내민 그림이 ‘주다’라는 뜻을 의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보다는 서로 싸울 뜻이 없음을 알리기 위해 오른 손을 내민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집트 시대 훨씬 이전 사람들은 길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면 자연스레 지니고 있는 무기에 손을 갖다 댔는데, 서로 가까이 다가가 적의가 없을 때 맨손을 내밀었다는 것이다.
■ 악수는 적의가 없음을 나타내는 제스처이긴 하지만 상대방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의 포옹과는 달리 상황에 따라 그 의미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악수가 일상적 인사법이 돼버린 요즈음에도 악수는 다양한 형태의 긴장감을 감추고 있다. 악수를 나눠도 다 같은 악수가 아니다.
그야말로 반가운 악수에서부터 심드렁한 악수, 공포 혹은 경멸을 전하는 악수, 불쾌한 악수 등 상대에 따라 의미가 다르다. 무사들이 칼을 뽑지 않고도 눈싸움으로 겨루듯 맞잡은 두 손은 보이지 않는 싸움을 벌인다고 봐야 옳을 듯하다.
■ 대통령과 정당 원내 대표들 사이의 악수, 대권 주자들의 악수, 노사 대표들의 악수, 국제 협상가들의 악수 등 온갖 종류의 악수가 이뤄지지만 담긴 의미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5ㆍ31지방선거를 앞두고 많은 출마자들이 경쟁자, 지지자 그리고 수많은 유권자들과 악수를 나누겠지만 손을 내미는 사람이나 손을 잡히는 사람이 똑같은 의도와 감정을 갖는 경우는 극히 드물 것이다. 출마자들은 악수의 횟수에 매달릴 게 아니라 악수를 통해 전해지는 신호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방민준 논설위원실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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