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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키신, 한국을 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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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키신, 한국을 홀렸다

입력
2006.04.1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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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평생 그리워하다가 만난 연인들이 헤어지기 싫어서 몸부림치는 것 같았다. 수십 번의 커튼콜, 끝없이 이어지는 앙코르, 미친 듯한 박수 갈채, 아우성치는 환호의 물결, 사인을 받으려고 건물 밖까지 늘어선 긴 줄. 8일 저녁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예프게니 키신(35)의 피아노 독주회에서 벌어진 풍경이다.

이 공연은 ‘사건’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베토벤(소나타 3번, 26번)과 쇼팽(스케르초 전곡)의 본공연 2시간에 이어 앙코르만 1시간 동안 무려 10곡, 다시 팬 사인회 1시간. 오후 8시에 시작한 공연이 사인회까지 마치자 자정을 훌쩍 넘겼다.

공연 내내 콘서트홀 로비에서는 표를 못 구한 관객 150여 명이 진을 치고 끝까지 모니터로 연주를 지켜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국내 클래식 공연 사상 이런 일은 없었다.

키신의 내한은 처음이다. 생후 11개월 때 누나가 치는 피아노 선율을 듣고 흥얼거렸다는 신동, 천재 중의 천재, 피아니스트 중의 피아니스트 등 최상급 찬탄과 함께 구름 떼 같은 청중을 몰고 다니는 그를 부르려고 국내 기획사들은 10년 간 공을 들였다. 인기 절정의 이 피아니스트는 수년 치 연주 일정이 꽉 차 있는데다 장거리 비행을 1년에 두 번 이상 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 행이 늦어졌다.

마침내 그가 온다는 소식에 팬들은 흥분했다. 별다른 홍보 없이도 표는 공연 한 달 전 매진됐다. 그런 만큼 관객의 열띤 반응은 충분히 예상됐던 것이다. 하지만 상상 이상이었다. 그건 발작에 가까웠다. 그러면서도 연주를 듣는 동안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진지하게 몰입하는 자세를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스타의 유명세를 소비하러 온 허깨비가 아님을 입증했다.

두어 곡 앙코르를 하면 파장 분위기를 띠는 것이 일반적인 음악회 풍경이지만, 이날은 갈수록 더욱 열기가 올라 나중에는 불에 덴 듯 얼얼할 정도였다. 작별의 시간,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되돌려 미친 듯이 서로를 탐하는 연인들처럼, 연주자와 관객들은 커튼콜과 앙코르를 거듭하며 뜨겁게 한 덩어리가 됐다.

예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열기에 예술의전당 측은 사고가 날 염려가 있으니 사인회를 취소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키신은 “몇 시간이 걸려도 하겠다”고 했다. 기획사의 전언에 따르면 사인회를 마치고 새벽 1시가 다 되어 호텔로 들어간 키신은 탈진했다. 또 “청중이 정말 특별하다. 원래 이렇게 열광적인가. 이탈리아 청중이 가장 열렬하다고 생각했는데, 한국 청중이 더 뜨겁다. 꼭 다시 오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연주는 감탄을 넘어 감동으로 숨이 멎는 듯한 열락을 선사했다. 무대에서 그의 모습은 ‘음악에 사로잡힌 영혼’,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공연 사흘 전 입국해서 매일 7~8시간씩 연습하며 최상의 무대를 준비했다. 연주자의 그런 헌신과 관객의 뜨거운 사랑으로 이번 공연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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