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가 들어서고 있는 충남 아산시 인근의 한 마을은 요즘 인심이 흉흉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정하게 지내던 이웃들이 이젠 얼굴을 맞대는 것도 꺼린다. 마을 공유 저수지 1,800여평의 소유권을 놓고 법정 다툼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치솟은 땅값이 불화의 원인이었다.
마을 주민들이 저수지를 조성한 것은 40여 년 전. 당시 농사를 짓던 30여 가구 주민들은 소유 농지 면적에 따라 한 두 가마의 쌀과 보리쌀을 걷어 공사비로 사용했다. 공사비 부담이 어려운 농민은 현장에 나와 일을 하는 것으로 부담을 대신했다.
축조 이후 마을 원로 3명이 저수지의 공동 소유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원로들은 1997년 “사후 정리가 복잡해 질 수 있으니 젊은 사람들이 관리하라”며 현지에 살면서 농사를 짓고 있는 중ㆍ장년층 주민 9명에게 소유권을 넘겼다. 당시에는 땅값도 미미한 데다 서로 가깝게 지냈던 터라 이의를 제기한 주민들은 없었다.
1990년 중반 인근에 삼성전자 공장이 들어선 직후까지만 해도 마을의 공동 소유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당시 삼성전자에 저수지 일부인 300여평을 매각해 받은 대금도 사이 좋게 나눠 가졌다.
하지만 3년 전 인근에 아산 신도시가 조성되면서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삼성전자 공장 건립 후 서서히 상승하던 땅값은 신도시 조성으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부동산 업계는 현재 낚시터로 활용되고 있는 저수지의 땅값이 평당 100만원까지 올라 18억원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땅값이 오르자 저수지 축조 때 함께 참여한 주민들 중 이미 논밭을 매각한 주민들 9명이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저수지를 만들 당시 참여한 주민과 자손들인 이들은 편의상 등기에는 올리지 않았지만 당시 돈을 내거나 축조 공사에 참여했으므로 소유권을 인정받아야 한다면서 대전지법 천안지원에 소송을 냈다. 마을 주민 A씨는 “남편이 공사 당시 쌀을 냈다”며 “농지를 팔고 농사를 짓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수지 소유권이 없다는 말은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도 농사를 짓거나 등기 소유자로 되어 있는 농민들은 이들의 주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B씨는 “농지를 매각할 땐 저수지에 대한 권리도 넘긴 것”이라며 “농지를 보유하지 않는 사람은 권리 주장을 할 수 없다”고 맞섰다.
저수지를 만들 때 작성한 장부가 없어 누가 얼마의 비용과 노동력을 부담했는지 확인할 수 없는 점도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마을 이장 정모(52)씨는 “아파트 단지와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땅값이 폭등해 마을 화합과 전통을 무너뜨렸다”며 “소송 당사자 모두가 고향 사람들인 만큼 원만한 합의를 이뤄 예전처럼 이웃 사이에 정이 넘치는 마을이 됐으면 좋겠다”며 안타까워 했다.
아산=글ㆍ사진 이준호기자 junh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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