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짝, 전통가요, 그리고 아리랑. 모두 트로트를 일컫는 말이다. 트로트가 ‘왜색 가요’로 폄하되던 시절에는 ‘쿵짜작 쿵짝~’ 하는 반주음에 빗대 비하의 뜻을 담은 뽕짝이라 불렸고, 1985년 트로트 전문 프로그램인 KBS 1TV ‘가요무대’가 생긴 뒤에는 전통가요라는 말이 등장했다. 최근 나훈아씨는 “트로트라는 영어 대신 ‘아리랑’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했다.
이처럼 트로트는 시대에 따라 그 음악도, 의미도 조금씩 달라지면서 하나의 장르라고만 볼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색깔을 갖게 됐다. 최근 장윤정, 여성 4인조 그룹 LPG, 쌍둥이 여성 듀엣 뚜띠, 박현빈 등 신세대 트로트 가수들이 등장하면서 그 폭이 더욱 넓어졌다. 특히 힙합 리믹스까지 시도한 장윤정의 ‘어머나’ 열풍은 ‘아줌마, 아저씨들만의 청승맞은 노래’로 여겨지던 트로트를 초등학생들까지 신나게 따라부르는 ‘국민 가요’로 탈바꿈시켰다.
반면 나훈아 이미자 하춘화 등 1960년대부터 트로트계를 이끌어온 가수들은 두터운 고정 팬을 거느리며 영원한 ‘국민 가수’로 군림하고 있다. 이미 가수로서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룬 이들은 TV에 좀처럼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도 공연 때마다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3월 25, 26일 이틀 동안 열린 나훈아의 데뷔 40년 기념 콘서트 티켓은 발매 일주일 만에 매진됐다.
이들 사이를 잇는 트로트계의 ‘좌장’들도 있다. 태진아 송대관 설운도 등은 활발한 방송 활동을 통해 정통 트로트의 맥을 이어가면서 댄스가수 신지, 춘자 등과 듀엣 곡을 선보이는 등 신세대 가수들과의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하지만 트로트의 숨은 힘은 수많은 무명 가수들이 활약하는 ‘언더그라운드’ 시장에 있다. 진성 김란영 신웅 김용임 등이 만든 일명 ‘고속도로 테이프’는 판매량이 각각 1,000만장을 넘는다. 다소 조악한 반주에 테이프 한 면이 하나의 노래처럼 줄줄이 이어지는 ‘뽕짝 메들리’가 대부분이지만, 고속도로에서의 인기는 메이저 가수들을 능가한다.
같은 트로트 가수라도 시대나 활동방식, 스타일 등이 천차만별이다 보니, 어디까지를 트로트로 볼 것이냐 하는 정체성 논란이 일기도 한다. 장윤정 류의 신세대 트로트를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인 예다. 송대관씨는 “트로트가 젊은 세대에게 어필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라면서도 “그러나 요즘 젊은 가수들은 트로트 특유의 창법 대신 일반 가요처럼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면 된장을 우러낸 듯한 구성지고 은근한 트로트 특유의 느낌을 살릴 수 없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반면 ‘어머나’의 작곡가 윤명선씨는 “일본의 시부야 팝도 스윙, 룸바, 차차차 등 과거의 장르들을 새롭게 포장해서 감각적이면서도 기성세대까지 끌어들일 수 있었다”면서 “신세대 트로트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논란과 별개로, 요즘 트로트계가 오버그라운드와 언더그라운드, 그리고 196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는 수많은 가수들이 함께 살아 숨쉬는 깊고 넓은 시장인 것만은 분명하다. 트로트가 한국 가요계의 살아있는 박물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객원 기자 lennonej@hk.co.kr
■ 노래방 트로트 순위
우리 국민들은 어떤 트로트를 좋아하고 즐겨 부를까. 노래방 반주기 전문업체 TJ미디어가 집계한 2005년 노래방 인기가요 200곡에 트로트는 장윤정의 '어머나'(3위)를 비롯해 23곡이 올랐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전국에 1만5,000대 가량 보급된 최신 인터넷 반주기를 통해 집계한 자료인데, 구식 노래방 기기들까지 합하면 노래방 인가가요 차트에서 트로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훨씬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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