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명 투표를 했어야 하는 건데….”
6일 최연희 의원 사퇴촉구결의안에 대한 국회 본회의 표결 결과가 나온 뒤 국회 안팎에서는 이런 말이 회자됐다.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될 줄 알았던 결의안이 겨우 턱걸이로 가결되자 터져 나온 탄식이었다. 동시에 국회의원의 위선을 뼈아프게 지적하는 말이기도 했다.
표결 결과는 그 동안 겉으로 드러난 정치권의 태도로 본다면 전혀 뜻밖이다. 최 의원 성추행 파문이 터진 이후 여야는 너나 할 것 없이 “최 의원은 사퇴하라”고 외쳤다. 심지어 성폭력 가해자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 제정 등 온갖 대책을 쏟아내기까지 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투표참여 260명 중 찬성은 겨우 149표였고 반대는 84표나 됐다. 찬성 의원수가 결의안 발의 의원 수인 151명에도 못 미쳤다. 기권(10표)과 무효(17표)까지 더한다면 찬성하지 않은 의원은 111명이나 됐다.
이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정치권의 이중적 행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무기명 비밀투표라는 장막 뒤에 숨어서 비겁한 행동을 한 것이다. 남들이 본다고 찬성표를 던지고 보지 않는다고 동정표를 던진다면 이미 의원으로서의 기본 자질을 떠나 양심을 버린 것이다.
더구나 여야는 한 술 더 떠 볼썽사나운 네탓 공방까지 벌였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이 뒤에서 반대표를 던진 뻔뻔한 이중 플레이를 했다”고 비난했고, 한나라당은 “여당이 한나라당에 책임을 덮어 씌우려고 일부러 반대표를 던졌다”고 공박했다. 여야는 부끄러운 결과에 대해 함께 머리를 조아려도 시원찮을 판에 진흙탕 싸움에만 열을 올린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정치권의 신뢰회복은 요원할 것이다.
정녹용 정치부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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