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영국 작가 루시 엘먼의 소설 ‘의사와 간호사’(휴먼앤북스, 정영문 옮김, 9,000원)를 관통하는 코드는 ‘엽기’다. 소설 맨 앞 장에 적절한 ‘경고문’을 달아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강력한 엽기 코드다.
‘지방 흡입술’이나 ‘위 절제술’로도 쉽사리 구제가 안 될 심각한 뚱보 간호사. “남몰래 먹기는 살찐 사람들의 저주”(60쪽)라 하면서도 입으로 향하는 손을 멈출 수 없는 그녀는, 새로 취업한 병원에서 만난 미끈하게 잘 빠진 의사와 용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이 남자, 뭔가 수상쩍다. “살고 싶어하는 사람을 매일같이 죽이”(74쪽)는 고의적 의료 사고를 남발하는 걸 보니 사디스트다. 한술 떠 뜬 이 의사 "여자의 모든 것을 불길하고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대하는"(141쪽) 마초다. 어, 이 남자, 알고 보니 남자도 좋아하는 듯.
이 엽기 남녀의 기괴한 엽색 행각은 시골 마을을 떠들썩하게 한다. “의학 저널에서 언급된 모든 최음제를 서로에게 주사해 주는”(166쪽) ‘의사 놀이’가 그나마 입에 담기에 가장 부담이 덜한 수준일 정도.
언어유희, 독설, 풍자, 조롱, 때론 허풍까지 각종 ‘비틀기 기술’이 화려하게 동원되는 특이한 화법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20쪽에 걸쳐서 병명을 나열하는 극단적인 열거법을 구사하기도 한다.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이 블랙코미디는 원초적인 욕망으로 꿈틀댄다. 고여있지 못하고 배설되어야 직성이 풀릴 운동에너지가 넘친다. 그러면서 사회적 금기(섹스, 마약, 배설, 토막 살인, 급기야 식인까지!)들을 거리낌없이 넘나든다.
그러나 일견 혼란스러워 보이는 이 뒤죽박죽 엽기 코드는 뚜렷한 방향성을 지닌다. 사방 팔방 이리저리 튀어 다니던 그 언어들이 ‘몸’이란 대상 아래로 질서 있게 수렴된다. ‘저주 받은’ 간호사의 몸이든, ‘축복 내린’ 의사의 몸이든, 몸은 그 자체로서 사랑스럽고 숭고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말해 준다. 몸은 ‘렛 잇 비’(Let It Be)다. ‘비만은 모든 악덕의 근원’이라는 맬서스식 격언이 통하는 ‘마른 인간’들의 시대라 할지라도.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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