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슈퍼볼의 영웅 하인스 워드가 자그마한 체구의 한국인 어머니와 함께 한국을 방문하였다. 대통령의 초청으로 청와대를 방문하여 대통령 내외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았는가 하면, 모 방송국의 밤 9시 뉴스의 특별 초대손님으로 초청받아 생방송으로 인터뷰도 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도시인 서울의 명예시민증도 받았다.
하인스 워드를 맞아 우리 국민은 일종의 영웅 신드롬에 빠져 있다. 한국말을 배우는 중이라며 그가 어눌하게 “안녕하세요”만 해도 국민들은 감격하고 있다. 게다가 그는 겸손하기까지 하다.
그는 늘 어머니에 대한 감사로 이야기를 시작하며 어머니에 대한 감사로 이야기를 맺는다. 작은 키에 이제는 초로의 쓸쓸함마저 느껴지는 어머니에게 미국 슈퍼볼의 영웅은 가식 없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지극한 사랑과 감사를 표현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것을 들으면 마치 조선시대의 효자가 환생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하인스 워드의 방한이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은 대단했다. 4일 그를 만난 대통령은 혼혈인들이 훌륭하게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5일 청와대와 교육인적자원부는 그 동안 초ㆍ중등 교과서에 단일민족국가로서의 전통을 자랑스럽게 기술하던 것을 오는 2009년부터는 ‘다인종ㆍ다문화’를 수용하는 내용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국회도 그의 방한에 맞춰 혼혈인과 국제결혼가족에 관한 세미나를 열고, 신문과 방송도 연일 단일민족, 혼혈인, 국제결혼 등에 관한 숱한 좌담과 기사, 칼럼과 사설을 쏟아내고 있다. 외국에서 뛰어난 업적을 내며 활약하는 한국인이 수없이 많았지만, 하인스 워드처럼 이렇게 짧은 시간에 한국 사회의 여러 분야에 자극을 주고 변화를 일으키는 경우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하인스 워드를 바라보며 우리 민족이 단일민족인지 아닌지, 단일민족이 자랑스러운 것인지 등을 따져보는 일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대외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안으로 힘을 모으기 위해 우리는 수없이 반복해서 단일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그토록 ‘자랑스럽고’ 동질적인 단일민족 내에 비극적인 수많은 차별이 존재해온 것이 사실이다.
여성에 대한 차별, 노약자에 대한 차별, 장애인에 대한 차별, 학력에 따른 차별, 빈부에 따른 차별, 지역출신에 따른 차별, 용모에 따른 차별 등 그토록 자랑스러운 단일민족 내에서 자행되어 온 차별을 생각하면 단일민족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의문이 절로 든다. 단일민족 내에도 별의 별 심한 차별이 있었으니 혼혈인에 대한 차별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믿듯이 우리 민족이 단일민족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에 단일민족이라는 개념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지금 우리는 부와 일자리, 더 좋은 교육환경과 결혼상대자를 찾아 국경을 넘나들며 사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전지구화된 세계에 살고 있다.
전지구화 세계에서 단일민족이라는 헛된 자랑스러움은 자칫 잘못하면 오만과 편견을 낳고 차별을 조장하여 갈등과 불안의 원천이 될 가능성이 높다. 평화를 누리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모든 종류의 차별을 없애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
전지구화와 함께 저출산, 고령화가 고착화되고 심화되면서 한국사회도 세계의 각 인종과 섞여 살아가야 하는 다인종사회로 들어서고 있다. 순수한 백의의 시대에서 색색가지 헝겊이 어울려 더 아름다운 퀼트의 시대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단일민족의 자랑스러움에 더 이상 도취되지 말자. 오히려 이제는 한국사회도 다인종사회임을 받아들이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차별 없는 퀼트의 세상을 만들어 가자.
은기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ㆍ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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