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7일 경기 평택평야에서 전쟁을 치렀다.
불도저와 굴착기를 동원한 용역업체 직원 700여명이 전투에 동원됐지만 지휘관은 현역 육군 준장인 경창호 국방시설본부 대미사업부장. 상대는 이미 국방부 소유로 전환된 기지건설 예정지에서 영농활동을 재개하며 기지건설을 반대하고 있는 주민들과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관계자 등 200여명이었다.
경 장군은 “주민들이 다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해 농수로를 차단하고 논두렁을 제거하라”고 작전지침을 내렸다. 하지만 강력히 저항하는 주민들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주민과 범대위 관계자 6명이 다치고 6명 경찰에 연행되는 불상사가 나고 말았다.
국방부는 이날 오전 9시께 굴착기 4대와 불도저 2대, 레미콘 차량 6대로 무장한 용역 직원들을 팽성읍 대추리와 도두리 지역으로 투입 시켰다. 전ㆍ의경 50개 중대 5,000여명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이들을 호위했다.
대추리 지역에서는 처음부터 주민들과 범대위 회원들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했다. 주민들은 길목에 눕거나 마른 짚에 불을 붙여 굴착기와 불도저의 진행을 방해했다. 일부 주민은 용역 직원과 경찰 저지선을 뚫고 불도저로 올라가 중장비 기사를 끌어내고 장비를 점거하기도 했다. 주민들의 항전이 장시간 이어지면서 논두렁과 농로를 파손하는 작전이 쉽게 진행되지 않았다.
반면 도두리 지역은 주민들의 저지선이 오래가지 못했다. 농수로가 시작되는 도두리는 영농활동의 사활이 걸린 곳. 국방부는 수로를 차단하면 영농활동도 저지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이 곳에 전력을 집중했다. 전ㆍ의경과 용역직원들은 볏짚을 태우며 저항하는 주민과 범대위 회원들 해산한 뒤 포크레인으로 수로를 파괴하고 콘크리트를 부어 손쉽게 폐쇄했다.
국방부는 기지가 들어설 농지의 소유권이 정부로 넘어온 만큼 주민들의 영농활동은 의도적인 기지건설 방해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렇다고 협의매수에 응하지 않고 이주마저 거부한 채 올해도 농사를 짓겠다며 버티는 일부 주민들을 강제로 퇴거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내놓은 방안이 농사가 불가능하도록 해 주민들을 고향 땅에 대한 집착에서 분리시키는 것이었다. 지난 달 주민들이 논갈이에 나서자 포크레인으로 농로에 대형 구덩이를 파 영농활동을 저지한 데 이어 이번에 수로까지 차단함으로써 국방부는 이번 작전의 성과를 자신하고 있다. 국방부는 기지가 들어설 농지의 경계선을 따라 철조망을 설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남은 주민들은 결사항전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대추리 이장 겸 주민대책위원장인 김지태(51)씨는 “논두렁을 베고 죽는 한이 있어도 고향을 버릴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6,000여평의 논농사를 짓는 송재국(69) 노인은 “이제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디 가서 새로 정을 붙이고 살어, 죽어도 여기서 죽어야지”라고 울먹였다. 주민들과 범대위는 양수기를 동원해서라도 농사를 짓는다고 맞서 ‘황새울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평택=정민승 기자 msj@hk.co.kr
■ 평택, 무엇이 문제인가
한미 양국은 2008년까지 경기 평택시 팽성읍의 캠프험프리와 서탄면의 오산공군기지를 중심으로 700만평 규모의 통합기지를 건설해 서울 용산기지와 미2사단 등을 통폐합ㆍ이전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지난해까지 대상부지의 80%를 협의매수하고 나머지는 법원에 공탁을 거는 등 강제 수용절차를 마쳤다. 올해 안으로 설계를 마치고 부지성토와 기반공사를 시작해야 하는 등 갈 길이 바쁘다.
하지만 협의매수에 응하지 않은 주민들이 올 봄 영농활동을 재개하면서 기지 건설에 제동이 걸렸다. 주민들은 대추리와 도두리 일대의 황새울 들판 65만평을 논갈이한 데 이어 마른 논에 직접 볍씨를 파종하며 강경하게 맞서고 있다. 주민들은 옥토를 버리고 고향을 떠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평화통일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는 “평택기지가 미국의 대중국 전초기지가 될 수 있다”며 기지확장을 반대하고 있다.
기지건설 부지의 대부분은 널따란 평택평야 들판. 주민들이 뿌린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랄 경우 기지건설은 그만큼 늦어지게 된다. 농작물이 4~5㎝까지 자라면 농지를 소유하지 않은 경작민에게 소유권이 인정된다는 대법원 판례 때문에 가을걷이까지 갈 수도 있다. 국방부가 주민들의 영농활동을 불법으로 규정짓고 강력대응에 나선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김정곤 기자 j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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