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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읽는다는 것의 역사' 묵독… 은밀한 읽기의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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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읽는다는 것의 역사' 묵독… 은밀한 읽기의 혁명

입력
2006.04.0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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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자신의 공간을 만드는 창설자이며, 언어의 땅을 경작하는 옛 농부의 상속인이며, 우물을 파는 사람이며, 집 짓는 목수다…독자는 여행객이다. 남의 땅을 이곳 저곳 돌아다니고 자기가 쓰지 않은 들판을 가로질러 다니며 밀렵하고, 이집트의 재산을 약탈하여 향유하는 유목민이다.”

작가와 독자, 쓰는 것과 읽는 행위의 근본적 차이에 대한 프랑스 철학자 미셀 드 세르토의 지적이다. 기량을 갖춰야 하는 작가와 달리, 지금 이 시대의 독자는 문자를 해독할 줄 알고 어느 정도의 어휘력만 갖추면 읽는데 어려움이 없다. 그렇다면 처음에는 어떻게 읽었을까. 음독(音讀)이었다.

고대 그리스인은, 문장은 그 자체로는 불완전하며 사람이 소리 내 읽어야 완성된다고 믿었다. 그리스 문자는 어간에 빈 틈이 없고 정서법도 통일되지 않았는데, 그래도 소리 내 읽으면 의미가 통했으니 애초부터 읽기를 염두에 두었다고 할 수 있다. 로마시대에는 글 읽는 사람이 늘었고 이들이 다른 사람에게 읽어주기도 했다. 그리스 책이 전리품으로 로마에 도착했고 개인 서고를 두는 이도 증가했다.

‘읽는다는 것의 역사’는 미시사로 살핀 읽기의 역사다. 예스퍼 스벤브로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교수 등 13명의 논문을, 로제 샤르티에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교수와 굴리엘모 카발로 로마 사피엔시아학원 교수가 엮었다.

읽기 방식은 12, 13세기 눈으로 읽기 즉 묵독(默讀)이 보급되면서 변화를 겪는다. 책에 제목이 붙고 단락의 분리와 표시, 용어일람, 차례, 찾아보기 등이 도입됐다. 도서관은 책을 보관하는 장소에서 읽는 공간으로 변신했고 여러 사람이 책을 읽기 때문에 묵독할 수 밖에 없었다. 독서의 개인화가 확산되고 은밀한 내용의 책을 즐길 수 있게 됐다.

2차 독서 혁명은 18세기 산업혁명과 여성 등 새로운 독자층의 유입에서 비롯됐다. 제한된 텍스트를 읽고 또 읽고 기억하고 암송하는 집중형 독서에서 대량의 텍스트를 소비하는 분산형 독서로 바뀌었다. 물론 이때도 집중형 독서파는 존재했다. 루소, 괴테 등의 작품, 특히 소설에 매료된 이들이다.

정보화시대, 새로운 디지털 환경을 바탕으로 3차 독서 혁명이 일어났다. 독자는 컴퓨터 앞에서 텍스트를 수정할 수도 있다. 인류가 갖고 있는 저술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접근할 수 있게 됐다.

부분적으로는 난해하지만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다. 고대 로마의 못 배운 벼락 부자는 고급 장서를 저택에 쌓아두고 그 어렵다는 에우리피데스의 ‘바커스 신도’를 끼고 다녔다. 중세의 궁정은 고급 가죽, 귀금속을 사용한 호화 장정 책으로 권력과 부를 자랑했다. 루소는 사람들이 책을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읽었다고 말하기 위해 새 책을 골라 읽는다고 개탄할 정도였다.

현재 미국, 유럽인은 교양이 저하하고 있다. 이들에게 책은 배우고 사색하는 텍스트가 아니라 소비하고 심지어 한번 읽고 버리는 소모품으로 비치기까지 한다. 당장의 현실이 이렇다면 미래의 독서는 어떤 모습일까. 필자는 “개인적인 실행과 선택, 생산 면에서의 혼란과 규율 없는 소비 등이 혼합된 독서의 미래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를 이 시점에서 묻는 것은 너무 이르다”며 판단을 미뤘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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