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사람에게 ‘만덕 할망’은 신화다. 그 주인공 김만덕(1739~1812). 유통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 1795년 기근으로 제주 사람 17만 명이 목숨을 잃자 전 재산을 구휼에 내놓았다. 그 공으로 일개 백성으로 또 여성으로 전무후무하게 정조를 알현하고 금강산을 구경하는 영광을 누린다. 정승 채제공이 그녀의 일생담을 기록해 ‘만덕전’을 남겼고 정약용 박제가 등이 그를 위한 시를 쓸 정도였다.
책의 서문은 그를 가리켜 “21세기를 살았던 18세기의 여인”이라 한다. 다름아닌 유교 사회에서 기녀 출신이라는 굴레를 뚫고 혁신적 사업가로, 선구적 기부가로 우뚝 선 그녀는 신사임당, 허난설헌보다 낫다고 평가한다. 신사임당 등은 가부장제하 지배 계급의 눈으로 선택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18세기 제주의 사회상을 엿보는 것도 책의 재미다. 당시 제주 전역은 5일장이 15개나 설 정도로 상업이 발달했으며, 일본과 밀무역이 성행했고 여자는 육지에 갈 수 없는 출륙 금지령이 있었다는 사실 등이 그렇다. 나이가 많은데도 혼인을 안 하면 풍속을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사또에게 혼이 났다는 대목도 보인다.
책은 대화체 형식을 채택한 덕에 소설처럼 술술 넘어간다. 제주의 옛 지도, 관아의 재판 모습, 기녀들의 악기 연주 사진 등 볼거리도 풍성하다.
민병선기자 doongs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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