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의 과거, 정책은 중요치 않다. 그럴 듯한 이미지로 대중을 사로 잡느냐가 승부다.’
9일 치러지는 페루 대선을 두고 워싱턴포스트가 내린 분석이다. 최근 남미에서 일고 있는 좌파 바람과 여성 바람이 맞붙은 페루 대선은 흥미롭지만 ‘속 빈 강정’으로 끝날 지 모른다는 우려가 자리잡고 있다.
선두를 달리는 오얀타 우말라(43) 후보가 과반 득표가 어려울 것으로 보여 다음달 9일 루르데스 플로레스(46ㆍ여) 후보, 알란 가르시아(56) 전 대통령 중 한 사람과 결선 투표를 치를 것으로 예상된다.
우말라 페루민족주의단결당 후보는 강력한 반미ㆍ반자본주의 전략으로 성공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을 흉내냈다.
육군 중령 출신으로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그는 공수부대 출신으로 역시 쿠데타 전력이 있는 차베스 대통령이 주요 에너지 사업을 국유화한데 착안, 외국 회사에 대한 세금 인상과 함께 3% 로열티를 부과해 빈민층에 대한 복지 혜택을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알레한드로 톨레드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인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코카인의 주 원료인 코카 재배를 합법화 한 모랄레스 대통령처럼 ‘코카를 일반 음식’으로 취급하겠다고 공약했다.
미국 일간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우말라에 대해서는 쿠데타와 인권 탄압 전력 밖에 알려진 것이 없다”며 “그가 집권할 경우 언론 탄압을 비롯해 강력한 독재체제를 만들지 모른다는 걱정이 많다”고 전했다.
우말라는 1992년 좌파 게릴라 동조 세력으로 의심된다며 수 백 명을 고문하고 살상했다. 그의 부모는 극우 민족주의자로 “스페인 이민 후손들은 모두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했고 동생은 지난해 대통령 암살을 시도하다 실패해 복역 중이다. 우말라는 가족들에 대한 행적에 대해 논평을 피하고 있다.
첫 여성 대통령을 꿈꾸는 플로레스 국민단일동맹 총재 역시 이미지 정치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기업 전문 변호사인 그는 스페인 이민자 후손으로 두 차례 하원 의원을 지냈고 지난 대선 때 23% 지지를 얻어 3위를 차지했다.
플로레스 후보 역시 “빈민층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주고 의료와 복지 혜택을 대폭 늘리겠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해외 기업에 대한 통제 강화에 반대하고 미국과의 FTA도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히는 등 친 자본 성향 역시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언론들은 “우말라는 복지 확대를 위한 재원 마련의 계획은 확실하다”며 “그러나 플로레스는 빈민층과 자본가 모두를 끌어안겠다고 외치기만 한다”고 지적했다.
3위를 달리는 가르시아 전 대통령은 두 후보를 겨냥해 “급진 민족주의자(우말라)나 자본의 앞잡이(플로레스)에게는 나라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며 “안정적 중도를 지향하는 내가 적임자”라고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가르시아의 과거 집권 시절(1985~90) 나라 빚이 70배 이상 늘어났다”면서 “그런데도 그가 안정이라는 이미지로 큰 지지를 얻고 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라며 이번 선거의 한계를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페루에는 모랄레스를 대통령으로 만든 볼리비아의 뿌리 깊은 사회 운동이나 칠레, 브라질 같은 튼튼한 좌파 세력이 없다”며 “결선 투표까지 유권자들은 계속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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