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참여연대가 발표한 ‘38개 재벌 총수 일가의 주식 거래에 대한 보고서’는 그 동안 총수 일가가 그룹 지배권을 활용해 얼마나 손쉽게 재산을 증식해 왔는지 속속들이 보여준다. 이들에게 수억원의 종자돈을 수천억원으로 불리는 것은 땅 짚고 헤엄치기나 다름없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총수 일가의 지분 취득 및 변동 과정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는 ‘문제성 거래’는 분석 대상으로 삼은 총 250개 계열사 가운데 모두 70건이었다. 문제성 거래가 가장 많은 것으로 지적된 그룹은 삼성으로 모두 10건이었고, KCC가 6건, 현대차가 5건, LG(GS와 LS 포함)가 4건, SK가 4건, 영풍이 4건으로 그 뒤를 이었다. 삼성의 문제성 거래가 가장 많은 것은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의 승계 작업 과정에서만 총 8건의 부당주식거래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문제성 거래’를 유형별로 보면 ‘회사 기회의 편취’가 30건으로 가장 컸고, ‘지원성 거래’와 ‘부당주식거래’가 각각 20건을 기록했다. 문제성 거래의 가장 대표적 형태라고 할 수 있는 ‘회사 기회의 편취’는 성장 가능성이 높은 사업 기회 등이 회사로 귀속되는 대신 일부 경영진이나 지배주주에게 돌아간 경우를 말한다.
현대ㆍ기아차 그룹의 계열사인 글로비스는 2001년 2월 정몽구 회장(40%)과 외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60%)이 100% 출자(초기 자본금 25억원)해 설립한 자동차 운송 및 종합물류 회사이다. 이 회사의 매출액은 매년 70% 이상 늘어나며 설립 첫해 65억원이었던 순이익이 2004년에는 696억원으로 늘어난다.
이에 따라 정 회장 부자는 지금까지 받은 배당금 133억원 이외에도 일부 지분 매각 대금으로 1,000억원, 거래소 상장으로 4,000억원대의 장부상 평가익 등을 보게 됐다는 게 참여연대 주장이다. 보고서는 “이러한 회사 기회의 편취는 회사와 전체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만큼 원칙적으로 금지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SK그룹 계열사로 정보통신(IT) 관련 컨설팅 회사인 SK C&C도 비슷한 경우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일가는 SK그룹이 SK텔레콤을 인수한 1994년 SK C&C를 SK㈜와 SK건설로부터 순자산가액(52억1,400만원)보다 훨씬 낮은 4억원에 인수한다. 특히 당시 최 회장이 투자한 자금은 2억8,000만원에 불과했다.
이후 SK C&C는 SK텔레콤과의 거래에 힘입어 매출이 94년 28억원에서 2004년에는 9,388억원으로 폭증한다. 최 회장은 이를 통해 2004년말 기준으로 2,614억원의 주식 평가 차익과 75억원의 배당 수익을 얻었다. 나아가 SK C&C를 통해 SK그룹의 지주회사격인 SK㈜의 지분을 확보, SK그룹의 지배구조까지 개편했다. SK㈜와 SK건설이 SK C&C의 주식을 계속 보유하고 있었다면 2004년말 현재 5,780억원의 주식 평가 차익과 150억원의 배당금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게 보고서의 분석이다.
신세계그룹과 광주신세계 및 조선호텔 베이커리, 효성그룹과 효성건설, 하이트맥주그룹와 하이스코트 등도 모두 회사기회의 편취 사례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서에 열거됐다.
‘지원성 거래’는 주로 모기업이 비상장 계열사에 물량 등을 몰아주는 사례이다. 대표적인 예가 대한전선그룹의 지배주주 일가가 10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삼양금속이다. 무역과 부동산임대업을 하는 삼양금속은 2004년 658억5,500만원의 총매출 가운데 관계사인 대한전선과의 거래에서 발생한 매출이 653억원으로 무려 99.16%에 이른다. 그룹 내 주력사인 대한전선이 몰아주기 거래를 통하여 지배주주일가 소유의 삼양금속 수익을 보장해 줌으로써 지배주주의 이익을 실현해 주고 있는 것이다.
주로 규모가 큰 상장 계열사에서 발견되는 ‘부당주식거래’ 사례로는 LG화학 이사들이 1999년 70%의 지분을 구본준 회장 등 총수 일가에게 주당 5,500원의 저가에 매각한 사례가 꼽혔다. 당시 LG화학은 ‘유동성 제고’가 필요해 주식을 매각하게 됐다고 밝혔으나 같은 날 총수일가로부터 LG유통과 LG칼텍스정유의 주식을 고가에 매입한 사실이 확인되며 이 같은 설명은 앞뒤가 맞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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