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록씨 로비 의혹 사건에서 촉발된 대검 중수부의 현대ㆍ기아차 그룹 수사가 ‘큰 불’로 번지는 양상이다. 검찰은 그러나 ‘현대차 불’이 더 커 먼저 끄려고 하는 것일 뿐 ‘김씨 불’도 결코 무시할 수 없음을 강조했다.
검찰은 오히려 “김씨 사건 수사가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다”며 김씨 사건의 핵심인 정ㆍ관계 로비 실체에 점점 다가가고 있음을 시사했다.
'순수한 계약관계'로는 의문 많아
검찰의 김씨 수사는 김씨가 기업들한테서 받은 돈의 성격을 규명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김씨는 기업들에게서 받은 돈이 사업 전략, 구조조정, 외자유치 등 경영 자문을 해 주고 받은 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컨설팅 대금과 로비 자금 사이에 경계가 애매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검찰의 시각은 다르다. 검찰은 여전히 김씨를 ‘브로커’로 칭하고 있다. 컨설팅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돼 있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김씨의 구속영장에 명시된 범죄사실에는 김씨가 금융기관 대출을 알선해 주는 대가로 금품을 받은 혐의가 들어있다. 김씨는 이 역시 정당한 수수료라고 주장했으나 검찰은 금융기관 임직원에 대한 로비 대가로 봤다.
검찰은 법원에 가서도 “무죄가 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기업들이 김씨와 체결한 계약 명목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본보가 확인한 김씨의 업체별 수입 내역에서도 김씨와 기업들간의 관계를 ‘순수한 계약 관계’로 보기에 미심쩍은 부분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2002년 대우자동차판매는 워크아웃 상태였고 2003년 진로 역시 기업 회생을 위해 주력하고 있었다. 같은 해 SK와 SK해운은 그룹 비자금 사건과 분식회계로 금융당국과 검찰의 수사를 받아야 했다.
‘금융계 마당발’인 김씨가 ‘해결사’로 나섰을 가능성이 다분했다는 것이 검찰 시각이다. 현대자동차에서도 컨설팅 명목으로 21억원을 받았지만 이 중에는 현대차 사옥 인허가 로비 명목이 포함된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현대차 그룹의 비자금 사용과 경영권 승계 과정에 김씨가 개입했다는 의혹도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다.
이런 이유로 검찰은 이들 기업들을 모두 수사 선상에 올려 놓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앞서 “현대차 외에 눈에 확 띠는 대기업은 없다”고 밝힌 바 있지만 김씨와의 돈거래가 드러난 만큼 살펴봐야 할 숙제를 안게 됐다. 검찰 안팎에선 이들 기업 외에도 김씨와 돈거래를 한 기업이 상당수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룹 총수 겨누는 현대차 수사
현대차 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는 정몽구 그룹 회장과 정의선 기아차 사장 부자(父子)를 정면으로 겨누고 있다.
채동욱 수사기획관은 “기업을 이용한 부(富)의 축적, 부의 이전이 적법하게 이뤄졌는지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기업 총수들이 가장 신경을 쏟는 경영권 세습으로 수사의 초점이 모아지고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검찰은 그 동안 경영권 승계 수사 여부에 대해 “비자금 수사 외 별건(別件)을 수사하고 있다”는 대답만 했었다.
검찰은 더 나아가 “비자금 수사와 별건 수사가 맞물려 있다”고 밝혀 현대차 그룹의 비자금이 정 사장의 경영권 승계 자금으로 흘러 들어간 단서를 포착했음을 내비쳤다.
이를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비자금의 사용처에 대해 “정ㆍ관계 로비에 너무 포커스를 맞추지 말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비자금이 정ㆍ관계 로비보다 정 사장의 ‘지분 늘리기’에 더 많이 사용됐을 수 있음을 시사한 대목이다.
현대차 그룹의 비자금 창구로 밝혀진 글로비스가 비자금을 조성하기 시작한 시기(2001년 말)는 정 사장이 계열사 지분 인수에 착수한 시기와 일치한다. 검찰은 비자금의 사용처를 규명하는 데 정 회장 부자 조사가 불가피하다고 못박았다.
김지성 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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