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인구는 얼마나 되나요?”, “1,000만 명이 넘지요”, “와, 서울은 굉장히 거대한 도시인가 보네요. 핀란드의 전체 인구는 520만 명밖에 되지 않는데”….
핀란드 북부 도시 오울루에서 취재 중 만난 여성 시공무원 에일라 배해쿠오푸스는 좁은 땅에 인구의 4분의 1이 밀집한 서울 얘기를 듣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한반도 면적의 1.5배에 달하는 넓은 국토에 서울 인구의 절반에 불과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생활 환경은 핀란드와 한국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핀란드의 국정 운영은 높은 복지예산과 확실한 사회보장, 탄탄한 교육 환경, 과감한 연구ㆍ개발(R&D) 투자 등으로 상징된다. 세계경제포럼이 지난해 9월 발표한 경제성장 경쟁력 지수에서 3년 연속 1위를 차지하면서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작지만 강한 나라’로 자리잡았다. 우리 정부도 ‘강소국(强小國)’ 핀란드를 본받으려 했지만 안팎으로 닮은 것보다는 다른 부분이 많아 보인다.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업무 방식이다. 핀란드에서는 정부, 기업, 대학 등 다른 기관의 인력이 프로젝트에 따라 재빨리 모였다 흩어지는 데 익숙하다. 핀란드 무역산업부 파울라 나이베르그 국장은 “다른 부처와 협력하려면 담당자에게 전화 한 통만 하면 된다”며 “우리같이 작은 나라 국민은 끊임없이 힘을 모아야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학연, 지연으로 형성된 담을 허물어뜨리기는커녕 더욱 견고히 하는데 집착하는 한국의 관료 사회와 사뭇 다르다.
영국의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반 부패 척도 10점 만점에 10점을 줄 정도로 부패와 담쌓은 것도 핀란드만의 강점이다. “지난 10년 간 공무원 부패 스캔들이 몇 번이나 있었나”라는 질문에 핀란드 경제연구소 식스텐 코크만 소장은 “관련자가 옷을 벗을만한 스캔들은 대여섯 차례 있었다”고 답했다. 그런데 그것도 공무원이 기업으로부터 출장비를 받았거나 국회에서 자료 출처를 다르게 밝혔다는 등 한국에서는 별 문제되지 않을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코크만 소장은 “핀란드는 엄격한 공무원 시스템으로 유명한 스웨덴의 지배를 받다가 1809년 러시아 자치주로 편입돼 1917년 독립하기까지, 살아 남기 위해 경제 성장에 주력했다”며 “철저한 감시체계에 경제성장을 위한 부단한 노력이 얹어진 과거 역사가 반 부패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했다.
높은 교육수준과 유연한 고용 시장은 한국 뿐만 아니라 다른 유럽연합(EU) 회원국도 부러워할 정도다. 핀란드 국적 항공기 ‘핀에어’의 크리스터 하글룬드 부사장은 “젊은이를 자유롭게 해고하도록 한 프랑스의 최초고용계약법(CPE) 폐기를 요구하는 시위를 이해할 수 없다”며 “나는 언제든지 회사 직원을 해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유연한 노동 시장의 배경에는 노조를 상대로 고용주 조합과 정부가 함께 협상을 벌이는 긴밀한 노ㆍ사ㆍ정 모델이 자리잡고 있다.
교육은 모두 무상 교육이고 외국 유학생에게도 대학 등록금을 받지 않을 정도다. 석사학위를 보유해야 초등학교 교사가 될 정도로 교사가 되기가 어렵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교과서 선택부터 평가방식까지 교사가 마음대로 정한다. 학교 수업 방식에서 대학 입시 출제 방식까지 모든 것을 정부가 관장하는 한국과는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배우려는 자는 모두 배워야 한다’는 정부의 교육철학으로 인해 핀란드의 대학 진학률은 65%에 달한다. 미국(약 50%)보다는 높고 한국(약 80%)보다는 낮지만 대부분 석사과정까지 마칠 정도로 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
헬싱키ㆍ오울루=김신영 기자 ddalgi@hk.co.kr
■ 핀란드에도 고민은 있다
국가 경쟁력 1위 핀란드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점은 공격적 마케팅 능력 부족이다.
마티 펜나넨 오울루 부시장은 “우리는 기발한 물건을 만들어내는 데만 익숙해져 그것을 판매하는 데는 약하다”며 “노키아가 마케팅에 성공한 것은 매우 예외적인 경우”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표적인 사례로 핀란드 북부가 ‘고향’인 털 옷 차림의 산타클로스를 미국 음료회사 코카콜라가 1931년 빨간 옷을 입혀 전 세계에 대대적으로 팔아먹은 사건을 들었다.
발명을 위한 혁신적 사고에만 익숙해져 공격적이어야 할 마케팅 단계에서 경쟁 상대에게 주도권을 뺏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부패에 익숙치 않아 ‘뒷돈 거래’가 성행하는 러시아나 콴시(關係ㆍ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중국에 진출하는데 고전하고 있다.
핀란드 경제의 가장 큰 고민은 역설적이게도 핀란드 최대의 기업인 노키아다. 핀란드 경제연구소 식스텐 코크만 소장은 “핀란드 경제가 노키아에 너무 의존하고 있다”며 “노키아 이후의 성장동력이 뚜렷이 보이지 않는 것은 가장 큰 핀란드의 고민”이라고 설명했다. 핀란드는 2000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의 30%, 경제성장률(실질 GDP 성장률 5.0%) 중 40%(1.9%포인트) 가량을 노키아에 의존하고 있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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