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가 설정한 우리의 임무는 물가안정을 지키고, 생산과 고용 측면에서 최대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촉진하며, 모든 미국인들을 만족스럽고 공정하게 지원하는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금융시스템을 증진하는 것이다. 그 짐을 무겁게 느낀다.” 앨런 그린스펀의 ‘18년 왕국’을 이어받은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2월6일 취임사는 담담했다.
전임자로부터 ‘후광’(중앙은행의 독립성)과 ‘독배’(자산시장 거품)를 동시에 물려받은 까닭에 신중하게 접근했던 탓도 있지만, 예측가능성을 중시해온 학자 출신의 그에겐 그린스펀류의 장사꾼 언사는 맞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시장의 평가는 몹시 후했다. “교수님의 첫 증언에 A+ 학점을 주고 싶다. 요구한 만큼 적절히 답하는, 모든 질문에 무리없이 대처하는 이코노미스트를 얻은 느낌이다.” 권한과 책임 등 직무영역을 넘는 부분에 대해선 철저히 함구하는 대신, FRB 의장으로서 지키고 발전시켜야 할 원칙과 시스템을 강조하는 절제된 모습이 시장의 기대를 높였다는 얘기다.
그는 일주일 전인 3월28일 첫 연방공개시장위원회를 주재하며 예고된 대로 연방금리를 0.25% 올려 이 같은 신뢰에 답했다. ‘버냉키의 FRB’를 시간표대로 착착 건설해가는 중이다.
▦우리나라에선 3일부터 ‘이성태의 BOK(한국은행 영문약자)’시대가 열렸다. ‘38년 BOK 맨’으로 정상까지 오른 이 총재로선 ‘자리의 영광’이 크면 클수록 ‘전환기적 도전’도 만만찮다.
이는 “21세기 첫 10년 동안 한은이 어떤 역할을 해 나갈지에 초점을 맞춰 중앙은행의 상을 정립해나가겠다”는 말로 취임사를 시작한 그가 “때로는 불확실성과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데서 잘 드러난다. 경기 회복세나 물가동향을 100% 확신할 수 없다고 해서 금리 결정을 실기(失機)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총재의 이 말에 “부동산시장 불안을 우려스럽게 관찰한다”는 발언이 보태지자 즉각 채권금리가 크게 뛰었다는 점이다. 당분간 금리인상 기조가 지속될 것으로 시장이 해석한 결과다.
시장은 그가 부총재 시절인 2004년 11월 금융통화위의 콜금리 인하를 끝까지 반대했던 일도 떠올렸을 법하다. 이런 일화로 인해 얻은 ‘매파’라는 분류가 지금은 부담스럽겠지만 첫 공식행사에서 ‘그가 말하면 시장은 듣는다’는 관행의 토대를 마련한 것은 좋은 일이다. 그가 첫 주재하는 7일 금통위가 기대된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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