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미국의 세계적인 정보기술(IT)기업인 퀄컴의 국내 시장지배력 남용 혐의를 포착, 현장조사에 나서 파장이 일고 있다.
퀄컴은 전세계 코드분할다중접속(CDMA)방식의 모뎀칩 독점 공급자로, 국내 휴대폰 제조업체들이 퀄컴에 모뎀칩 구입비용으로 지급하는 총액은 한해 3조원 가량 된다.
공정위는 이와 관련, 3~4일 퀄컴코리아 사무실과, 삼성전자 LG전자 등 휴대전화 단말기 제조업체에 대한 현장 조사를 대대적으로 실시했다. 퀄컴이 한국 휴대폰 제조사들의 CDMA모뎀칩 자체개발이나 다른 CDMA모뎀칩 제조업체와의 거래를 방해했는지, 공급가격을 부당하게 높게 책정했는지 여부 등이 중점 조사 대상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제 시작 단계여서 조사가 얼마나 오래 걸릴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휴대폰 메이커에 퀄컴은 ‘왕’
CDMA기술을 최초 개발하고 15년간 CDMA모뎀칩 시장을 지배해온 퀄컴이 국내 시장에서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CDMA휴대폰은 삼성전자 LG전자 팬택앤큐리텔 등 한국업체가 한해 전세계 판매량의 절반 정도인 7,000만대를 생산하고 있다. 각 휴대폰에는 1개당 30달러 안팎인 퀄컴의 CDMA모뎀칩이 들어간다.
모뎀칩은 목소리를 전기 신호로 바꾸고, 이를 다시 목소리로 조합해내는 휴대폰 단말기의 핵심부품. 때문에 퀄컴이 공급을 줄이면 국내 휴대폰 제조사들은 수출전선에 어려움을 겪게 될 정도로 퀄컴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퀄컴의 이러한 독점적 영향력을 확인해준 일화가 있다. 지난 해 10월 국내 벤처기업 이오넥스가 보도자료 등을 통해 CDMA모뎀칩을 자체 개발해 LG전자와 함께 CDMA휴대폰을 출시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오넥스는 이후 기자들에게 전화를 걸어‘LG전자’가 참여했다는 문구를 빼줄 것을 요청해 의아함을 자아냈다. 업계에서는 이오넥스의 CDMA모뎀칩 생산량이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는 상황에서, LG전자가 퀄컴의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것이 없기 때문에 수습에 나섰다는 해석이 파다했다.
●외국 휴대폰메이커는 반퀄컴 전선형성
퀄컴은 유럽에서도 사면초가에 빠져 있다. 지난해 10월 노키아, 에릭슨 등 세계 주요 휴대폰 제조업체 6개사가 퀄컴을“다른 휴대폰칩 제조업체의 제품을 구매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부당하게 높은 로열티를 요구하고 있다”며 유럽집행위원회에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제소,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다. 이에 앞서 미국에서도 브로드컴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뉴저지 지방법원에 퀄컴을 상대로 특허권 침해와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다.
외국의 휴대폰 제조업체들이 공개적으로‘반(反)퀄컴’전선을 구축한 것과 달리, CDMA휴대폰 제조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한국 업체들은 여전히 조심스런 행보를 보이고 있다. 모 휴대폰 제조업체 관계자는 “공정위 조사로 미국 수출에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되는 점도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등 세계적인 기업들로 조사대상을 넓힌 공정위가 퀄컴 조사에서 소기의 성과를 내기위해서는 퀄컴 앞에서 한없이 작아져 있는 국내 기업들의 협조를 원만하게 이끌어 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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