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영화 만들기가 갈수록 힘들다. 연인들을 애절하게 떼어놓는 게 멜로영화의 관건일진대, 신분이나 계급 차별은 줄어들고, 어지간한 병은 치료만 잘 받으면 죽음에까지 이르진 않는다. 작가와 감독들은 기를 쓰고 희귀병과 사회적 금기를 찾아 보지만, 선택의 폭은 좁아진다.
한류스타 최지우의 스크린 복귀작 ‘연리지’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의 설득기제를 찾으려다 막다른 골목과 마주친 한국영화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야말로 한국 멜로영화의 ‘불치병’인 불치병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나름의 변주와 반전을 통해 새로운 내러티브를 창출해보려 한 감독의 고민과 노력이 엿보인다. 그러나 관객에게는 되레 두 배의 황당함과 실소를 선사하며 ‘불치병 코드’가 한계에 봉착했음을 반증한다.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멜로영화의 관습들을 고스란히 집대성한 ‘연리지’는 천하의 바람둥이 민수(조한선)가 원발성폐고혈압이라는 희귀병에 걸린 혜원(최지우)을 만나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 과정을 기시감(旣視感)으로 충만한 장면들에 빼곡히 나눠 담았다. 두 연인은 비오는 날 난폭운전으로 흰 옷에 빗물을 튀기면서 우연히 만나고, 차에 탄 여자는 약속한 듯 휴대폰을 두고 내린다.
불치병에도 불구하고 천진발랄한 그녀는 남자와 첫 키스를 하다 수줍게 도망치고, 장대비를 맞고 대문 앞에 서 있는 남자에게 “바보야, 나 죽어”를 울며 외친다. 가히 클리셰의 총출동이라 할 만한 상투적 서사 전개로 인해 반전의 효과는 코웃음 속에 묻혀버리고, 두 주인공의 감정에 동참하지 못하는 관객은 지루하다 못해 외로울 정도다.
영화는 신파의 혐의를 벗기 위해 최성국, 서영희 커플의 코믹한 사랑 이야기를 곁들이며 로맨틱 코미디의 경쾌한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코믹과 신파는 물과 기름처럼 시종 겉돈다.
30대 여배우들이 나이에 맞는 다양한 배역으로 한국영화의 중흥을 이끌고 있는 요즘, 서른 한 살의 최지우가 극중 배역과 유리된 채 ‘지우히메’의 청순하고 귀여운 이미지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모습은 이 아름다운 한류스타의 미래를 심히 염려하게 만든다.
그러나 불치병이 어디 ‘연리지’만의 잘못이겠는가. 사랑의 슬픔은 불치병 같은 외부의 방해 때문이 아니라 사랑이 그 내적 기제에 의해 자체 소멸하고 침식된다는 사실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왜 한국영화만 간과하고 있는지 안타까울 따름이지만, 최근 한 해 동안만도 ‘내 머리 속의 지우개’ ‘파랑주의보’ ‘백만장자의 첫사랑’ 등이 불치병 릴레이를 펼치며 동어반복을 계속했다. ‘연리지’는 두 나무가 자라면서 가지가 붙어 하나의 나무로 합쳐지는 현상으로, 불치병으로 인해 하나가 되는 두 주인공의 사랑을 은유하는 제목이다. 13일 개봉. 12세.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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