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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기자의 씨네다이어리/ 외설 무서워 예술 못보나

입력
2006.04.0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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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한 동시상영관에서 스페인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욕망의 낮과 밤’을 친구와 함께 관람했다. 친구는 극장 문을 나설 때 “욕망은 무슨…”이라며 불만을 터트렸다. 동시상영관이라는 야릇한 장소와 꿈보다 해몽이 좋은 제목이 만들어낸, ‘뼈와 살이 타는’ 화끈한 영화일 것이라는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한때 동시상영관이 욕정 해소의 동의어 역할을 한적이 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에로 비디오 사업이 ‘배설구’ 역할을 대신하면서 동시상영관은 급속도로 사라져갔다. 활황을 누리던 에로 비디오도 짧은 전성기 끝에 ‘포르노의 바다’ 인터넷에 밀려 사양 길로 접어들었다.

지난해 베를린영화제에서 예술공헌 은곰상 등 3개 상을 수상한 대만 차이밍량(蔡明亮) 감독의 ‘흔들리는 구름’이 약 2분 가량 삭제된 채 지난달 31일 개봉됐다.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수입사 유레카픽처스가 낸 18세 관람가 등급 신청에 대해 2차례나 제한상영(성인영화 전용 상영관에서만 상영 가능) 판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성인 전용관이 전무해 제한상영 판정이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현실에서 수입사는 자진 삭제를 선택해야만 했다.

‘흔들리는 구름’은 무척 야해 보이는 영화다. 남녀의 하얀 나신이 무시로 등장하며 다양한 성 행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웬만한 포르노는 저리 가라 할만한 결말은 정말 극장에 걸릴 수 있는 영화인가 의문이 들 정도로 충격적이다. 그러나 영화는 숨막힐듯한 관능을 내뿜거나 관객의 몸을 뜨겁게 달구지 않는다. 가뭄으로 표현되는 삭막한 인간관계 속에서 애정에 목 말라 하는 주인공들의 애처로운 모습이 가슴을 짓누를 뿐이다.

‘흔들리는 구름’은 우리와 정서가 비슷한 대만에서 무삭제로 개봉돼 예술영화로는 드물게 15만 관객을 동원하는 성과를 올렸다.

인터넷이 ‘에로 시장’을 장악하면서 극장에서 숨은 욕정을 털어내려던 시대도 완전히 저물었다. ‘흔들리는 구름’이 무삭제 개봉됐어도 ‘예설’ 대신 ‘외설’을 탐닉하려는 관객, 특히 학생은 극소수에 불과했을 것이다. 18세와 20세 사이의 청소년을 보호하겠다는 현행 등급분류 체계의 제한상영 규정이 애먼 예술영화의 정상적인 상영만 가로 막는 게 아닌지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라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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