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지난주 8ㆍ31 대책의 후속으로 내놓은 ‘주택담보대출 리스크관리 강화 조치’에 일주일도 안 돼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투기수요를 막는다며 대출 한도를 대폭 줄였지만 대출기간이 길수록 빌릴 수 있는 돈도 많아지게 돼 있어 정작 돈많은 투기자가 장기 대출로 많은 돈을 빌린 뒤 중간에 한꺼번에 갚을 경우 막을 방도가 없는 상태다.
이번 금감원 조치의 핵심은 연간 버는 소득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목돈을 빌릴 수 없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존의 주택담보비율(LTV) 제한에 더해 총부채상환비율(DTI)이라는 새 기준을 도입했다. DTI는 쉽게 말해 연봉에서 원금과 이자 상환으로 빠져나가는 액수의 비율. 5일부터는 원리금 부담이 연봉의 40%를 넘을 경우 대출이 불가능하게 된다.
하지만 부동산업자와 은행 일선 대출담당자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이를 빠져나갈 방법이 거론되고 있다. 매년 갚을 돈이 연봉의 40%만 넘지 않으면 되기 때문에 대출기간을 늘리면 한 해에 갚을 돈이 줄어들므로 대출한도를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연봉 5,000만원인 회사원이 6억원 짜리 아파트를 사겠다며 연 5.58%(시중은행 평균) 금리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경우 3년 만기의 한도는 5,000만원인데 비해 15년은 2억원, 30년은 2억9,000만원까지 늘어난다.
현재 시중은행들은 통상 3년 안에 중도 상환하면 1~1.5% 정도의 수수료를 부과하지만 3년을 넘으면 이를 면제해 준다. 극단적으로 가정하면 돈많은 투자자가 30년 만기로 돈을 빌린 후 3년이 조금 넘어 한꺼번에 원금을 갚아도 아무런 부담이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금감원의 입장은 다르다. 수요 억제를 위해 대출한도를 줄이긴 했지만 실수요자에게는 장기대출이라는 활로를 열어 준 것이어서 별도의 수수료 부과 등 추가규제가 적절치 않고, 이미 다른 규제장치도 많아 실제 허점을 악용하는 사례는 많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의도적으로 장기대출을 받는 부유층과 갑자기 여윳돈이 생겨 중도상환하는 사람을 구별하기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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