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좌파정권이 국영기업과 합자를 거부한 외국기업에게서 유전을 빼앗는 등 에너지 국유화 행보를 노골화하고 있다.
라파엘 라미레스 베네수엘라 석유장관은 3일 프랑스 석유기업 토탈과 이탈리아의 에니가 베네수엘라에서 운영해온 유전을 접수했다고 발표했다. 토탈은 하루 3만 배럴을 생산하는 주세핀 유전의 지분 55%를 갖고 있고, 에니사는 하루 생산량 5만 배럴의 다시온 유전 지분 전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번 조치는 두 기업이 개발 유전을 베네수엘라국영석유사(PDVSA)가 경영권을 갖는 합자벤처로 전환하는 것을 반대한 데 대한 보복의 성격이 짙다. 의회가 지난달 30일 승인한 새 운영협정은 외국 민간기업이 운영하는 유전 32곳을 PDVSA가 60% 이상의 지분을 갖는 국영합자벤처로 전환하고, 외국 기업에 부과하는 석유 로열티를 종전의 16.6%에서 33.3%로, 소득세는 34%에서 50%를 상향조정했다. 라미레스 장관은 “1일부터 모든 유전은 PDVSA가 관장한다”며 “(베네수엘라) 법을 따르지 않는 기업은 이 땅에 계속 남아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새 협정은 베네수엘라에서 석유 등 에너지 개발로 외국기업들의 배를 불리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는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의지를 현실로 옮긴 것. 베네수엘라는 세계 5위 석유수출국으로, 하루 330만 배럴을 생산하는 국영 PDVSA 외에도 외국 기업들이 정부와 계약을 맺고 산유량의 약 3분의1을 책임져왔다. PDVSA는 지금까지는 민간기업 생산분을 추출 비용의 5배를 주고 구입했는데, 새 협정 시행으로 모든 유전을 장악하게 되면서 앞으로 12년간 313억4,000만 달러를 절약할 수 있을 전망이다.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로열더치셸, 렙솔 등은 새 협정에 서명, 25개 유전은 국영합자벤처로 바뀌었다. 마라카이보호수 유전 지분 27%를 PDVSA에 매각키로 한 노르웨이의 스타트오일 등 일부 기업은 손실을 감수하며 PDVSA에 유전을 넘겼다.
베네수엘라 정부 방침에 반발한 외국기업들은 더욱 가혹한 제재에 시달리게 됐다. 토탈과 에니는 수백만 달러의 미납 세금을 추징당할 위기에 처했다. PDVSA는 새 협정에 반대하며 쿠이마레 라 세이바 유전의 지분을 렙솔에 매각하고 철수한 미국 기업 엑손 모빌에 대해선 석유제품 프로젝트에서 배제키로 했다.
4일까지 브라질에서 계속된 미주개발은행(IDB) 연례총회에서도 남미의 에너지 국유화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브라질이 볼리비아 정부의 천연가스 국유화 및 수출가격 인상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은 국영석유기업 페트로브라스가 볼리비아에서 천연가스를 개발하고 있다.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3일 “자원 약탈로 빈부간의 분열의 골이 깊어졌다”며 “식민 체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에너지 국유화는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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