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명감독들이 만든 영화를 보면 클래식 음악을 아주 인상깊게 사용한 장면들을 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들이 아닐까 싶다.
‘2001년 오딧세이’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나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은 영화의 어려운 컬트적 요소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할 정도로 독특하게 쓰이고 있다. 이처럼 적절한 장면에 삽입된 클래식 음악은 영화의 예술적 효과를 극대화한다. 최근 개봉한 두 영화에서도 그런 예를 본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 원작인 영화‘오만과 편견’을 보고 나오면서 관객들이 중얼거린다. “무도회 장면의 음악,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바이올린으로 시작되는 그 선율은 헨리 퍼셀이 작곡한‘압델라자, 혹은 무어인의 복수’라는 곡으로, 음악 전공자나 애호가도 잘 모르는 곡이다. 그런데도 낯설게 들리지 않는 것은 그 선율이 훗날 여러 작곡가들의 소재로 쓰였고, CF음악에도 자주 나오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곡이 브리튼의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일 것이다.
‘매트릭스’의 감독 워쇼스키 형제가 각본을 쓴‘브이 포 벤데타’는 마치 미국의 부시 정권을 맹공한 ‘화씨911’의 액션영화 버전을 보는 듯 강한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다. 처음부터 심상치 않은 서주가 나오고 극중 주인공인‘브이’라는 테러리스트가 일을 저지를 때마다 확성기를 통해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이 울려퍼진다.
원곡은 마지막에 실제 대포를 쏘게 되어 있지만, 이 영화에선 건물이 폭파되는 효과로 짜릿한 순간을 연출하고 있다. 테러의 시대, 공포를 이용한 정치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차이코프스키로 전달하는 것을 보면, 히틀러가 이용했던 바그너 음악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만큼 음악은 강렬한 것이다.
음악은 영화라는 매체에 확실한 도움을 주지만, 도움을 받는 쪽은 음악도 마찬가지다. 훌륭한 영화에 한 번이라도 등장한 클래식 음악은 다른 어떤 작품보다 대중에게 기억되기 쉽다는 이점이 있다.
많은 클래식 음악이 영화에 삽입되어 널리 알려지고 있다. 영화음악 관계자들은 영화에 넣을 클래식음악으로 유명한 곡을 더 선호할지 모르나, 그 유명도가 어쩌면 다른 영화 덕분에 생겨난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은 과거의 클래식 음악들을 더 폭넓게 찾아내야 한다. 숨어있던 음악이 영화를 통해 단숨에 세계인의 애청곡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악사중주단 콰르텟엑스 리더 조윤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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