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이번에 국무총리 후보로 여성을 지명하였다. 국회의 동의를 받게 되면 최초로 여성 국무총리가 임명된다. 관직임명이나 판검사 임관 등에서 최초니 최연소니 여성이니 하는 것이 관심거리인 사회는 성숙하지 못한 후진적인 사회인 것만 나타내는 것일 뿐인데, 이제는 우리 사회도 국무총리가 여성이냐 남성이냐 하는 것은 별 의미도 없고 관심거리도 되지 못한다. 문제는 국무총리로서의 역할과 일을 제대로 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이 주요한 관심거리일 뿐이다.
●여성에 앞서 총리 수행능력 우선
이해찬 전 총리가 사임한 관계로 현재는 부총리인 재경부 장관이 국무총리 직무를 대행한다. 새 국무총리 후보는 국회의 동의를 앞두고 있는 신분이기에 국무총리의 업무를 행하면 안 된다. 지난 김대중 정부에서 법규의 어디에도 없는 ‘국무총리 서리’를 합헌이라고 우기며 위헌적인 일을 일삼았으나, 현 정부에서는 이러한 일은 아직 하지 않았다.
그런데 국무총리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라는 명칭이나 우리나라의 변질된 대통령제나 모두 정상인 것은 아니어서 국가 운영에 상당한 오류가 발생하고 있지만, 국무총리직도 따지고 보면 낡은 왕조적 유물이다. 국무총리를 의원내각제적 요소라고 하는 견해도 있지만 그 연원을 보면 전혀 아니다.
한자어 ‘국무총리(國務總理)’라는 이름은 1911년 중국에서 신해혁명이 있은 다음해에 난징 임시정부가 채택한 중화민국임시약법(中華民國臨時約法)에서 처음 등장한다.
미국 대통령제를 본 따 참의원에서 선출되는 대총통과 부총통을 두면서 대총통을 보좌하는 지위로 행정내각에 국무총리와 각부총장을 두었다. 여기서부터 동아시아 지역의 헌법에서 국무총리라는 직이 만들어진다. 이는 뒤이은 1913년의 중화민국 헌법 초안, 1923년의 중화민국 12년 헌법, 1932년의 만주국 정부조직법에까지 이어진다.
이런 와중에 중국 상하이에 있던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도 1919년 대한민국임시헌법을 만들면서 이를 받아들여 대통령을 두고 국무총리를 두었다.
해방 후 건국 헌법인 1948년 헌법에서도 대통령제를 채택하면서 국무총리는 두었는데, 중국과 만주에서 활동하던 독립지사들이 익히 익숙한 제도였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이리하여 우리 나라에서는 1954년 헌법을 제외하고는 대통령제를 채택하면서도 국무총리를 무엇인 양하며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대통령은 ‘선출된 군주’로 인식되어 이식되었다. 미국의 ‘president’를 ‘백리새천덕(伯理璽天德)’이나 ‘대통령(大統領)’ 또는 ‘대총통(大總統)’으로 번역한 말부터 여전히 군주로 파악한 것이다. 군주를 받드는 각료조직을 두고 총괄책임자를 두어 군주를 보좌하게 하는 것은 이미 당나라 이후 아시아에 정착된 구조이다.
그래서 일본에서 메이지 유신 이후 1889년 헌법을 만들 때 유럽의 입헌군주제하에서의 내각제도를 수용한 결과 자연스레 군주를 받드는 내각책임자로 내각총리대신을 두었고, 이러한 내각총리대신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1894년 갑오개혁이나 일본이 명성황후를 살해하고 실시한 을미개혁의 내각제도는 모두 이러한 구조를 조선식민지에 이식하고 조선황실을 무력화하려고 한 것이었다.
●얼굴마담·방패총리 그쳐선 안돼
아무튼 정상적인 대통령제에서는 없는 국무총리라는 직은 이러한 군주제적 유물로 퇴화된 잔재인데 이것이 권위적 대통령제와는 어울리기 때문에 현재까지‘권위적 대통령+보좌역으로서의 국무총리’라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국무총리는 얼굴 마담이거나 대통령에 대한 공격을 받아내는 총알받이로 쓰였다.
우리 대통령제도 이런 시대착오적인 구조이지만 그 안에서라도 봉건적 대통령제를 극복하여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어보려고 한 것이 분권형 국정운영 모델인 실질 총리이다. 이런 구조를 잘 파악하고 부디 새 총리는 총리의 역할을 잘해주었으면 한다.
정종섭 서울대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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