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세계에서 일부일처제는 변태다.”
얼마 전 케이블채널 ‘내셔널지오그래픽’이 방영한 ‘섹스 & 와일드’(원제 When animals attract)에서 한 해설자가 던진 기상천외한 말이었다. 일부일처제가 변태라니…거두절미하고 들으면 오히려 해설자가 변태처럼 느껴질 법 했다.
그러나 해설자는 일부일처제에 대해 가치판단을 한 것은 아니었다. 원시사회의 폴리가미(polygamyㆍ일부다처제)로 가자는 주장도 아니었다. 그저 자연세계가 그렇다는 것을 재미있게 설명한 것이다. 대부분 동물들이 폴리가미를 택하기 때문에 일부일처제가 자연세계에서는 오히려 인위적이라는 얘기였다.
굳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이 말은 가치의 상대성을 지적하는 표현으로는 압권이었다. 사실 한 지역에서 통하는 예의가 다른 곳에서는 무례가 되기도 한다. 아이 머리를 쓰다듬는 행위만해도 상당수 국가에서는 불쾌한 일로 치부된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고 정치적 환경이 변하면 그토록 중시됐던 가치가 사소한 사안이 되고 옳고 그름의 판단이 뒤바뀌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금 여야는 물론 언론까지 나서서 격렬하게 싸우는 테마인 진보와 보수만해도 그렇다. 우리 사회에서 진보는 좌파적 의미로 해석되지만 소련 등 동구권이 붕괴될 때는 우파가 진보였고 좌파는 수구보수로 통했다.
이념을 놓고도 이럴진대 구체적 정책에 대한 가치판단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교육부가 성역처럼 고수하는 ‘3不 정책’은 교육현장에서 여러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3불 중 하나인 고교등급제 불가는 이미 외국어고, 과학고, 자립형 사립고, 그리고 강남지역의 고교들에 의해 무너지고 있다.
서민 학부모들은 “과거 명문고 시절에는 가난한 학생들도 머리만 좋으면 헌신적인 선생님들 밑에서 공부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특목고를 가려면 돈도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3불 정책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검찰의 독립성 문제도 그렇다.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의 차원에서 검찰의 독립 논리가 나왔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자체가 목적이 되고 있다. 검찰 독립만큼이나 검찰 비대화, 월권도 현안이 되고 있다.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주식투자도 그렇다. 안정성이 가장 중요하지만 금리가 4~5%로 낮아지자 기금의 주식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더욱이 론스타가 4조5,000억원을 빼가는 어이없는 상황을 목도하면서, 또 외국자본이 주식시장을 쥐고 흔드는 현실에서 “연기금은 왜 가만 있느냐”는 볼멘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논리나 주장, 정책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는 법이다. 우리 정치는 이념이나 정책을 놓고 사생결단식 다툼을 벌이는데 익숙해 있다. 그러나 나중에 보면 그렇게 싸웠던 정파간 입장차이가 별거 아닌 경우가 태반이었다.
4월 임시국회가 3일 시작됐다. 부동산 후속대책 입법부터 금산법, 사학법, 비정규직법 등 의미 있는 법안들이 많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거친 싸움이 예상된다. 하지만 “나만 옳고 너는 틀리다”는 편협함을 접는다면 타협은 어렵지 않다. 보는 사람에게는 싸움이 없으면 재미도 없겠지만 나라나 국민에게는 도움이 될 터이다. 이번 국회에서는 ‘변태의 깨달음’을 통한 타협을 기대해본다.
이영성 부국장대우 정치부장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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