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 ‘리메이크’ 시대. 단순한 재출간이 아니다. 과거 베스트셀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절판된 책들이 제목, 내용, 판형을 바꿔 선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출판 리메이크의 선두는 문학, 특히 최인호씨의 소설이다. 1980년대 인기를 누렸던 작품들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2인조 살인강도 이종대 문도석을 다룬 ‘지구인’(전3권, 문학동네 펴냄)을 젊은 작가들의 추천으로 첫 출간 20년 만인 지난해 초에 수정, 보완해 출간한데 이어 11월에는 ‘겨울나그네’(열림원 펴냄)를 다시 냈다.
역시 20년 만이다. 당시 영화로도 만들어져 흥행에 성공했던 ‘겨울나그네’ 는 요즘 젊은 여성들의 감각에 맞춰 표지를 바꾼 것은 물론, 작가가 감정과잉이나 신문연재 당시 중복된 내용을 없애고, 문장을 다듬는 ‘리메이크’ 작업을 거쳤다.
토정 이지함의 삶과 역정을 그린 이재운씨의 92년 소설 ‘토정비결’(명상 펴냄)도 잘못된 부분을 고쳐 14년 만에 다시 선을 보였고, 이청준씨의 ‘눈길’(열림원 펴냄)도 소설 이미지를 살린 삽화를 넣어 단행본으로 냈다.
당시 도덕적인 비판 분위기와 맞물려 절판된 92년 장정일씨의 첫 소설집 ‘아담이 눈뜰 때’와 그 이후의 장편 ‘너에게 나를 보낸다’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등도 문장을 손질해 전집(총6권, 김영사 펴냄)으로 다시 빛을 보았다.
외국소설로는 덴마크 출신 페터 회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마음산책 펴냄)이 대표적인 리메이크. 빌 어거스트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했던 이 소설은 96년 첫 국내 출판 당시에는 주목을 받지 못해 절판 됐으나 추리소설 마니아들의 끈질긴 요청으로 10년 만에 원문에 충실한 번역으로 재출간 됐다.
야구가 사라진 가상세계에 사는 야구광들의 철학적 이야기인 일본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소설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웅진씽크빅 펴냄) 역시 비슷한 이유로 10년 만에 다시 나왔다.
문학분야뿐 만이 아니다. 절판된 ‘쇼펜하우어의 토론의 법칙’ (원앤원 북스 펴냄)이 내용 수정을 거쳐 출판됐고, 허브 코헨이 쓴 ‘협상의 법칙’(청년정신 펴냄)도 절판 9년 만에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번역으로 다시 나왔다.
독자들의 반응도 기대 이상이다. ‘겨울나그네’는 젊은 여성층과 20년 전 영화로만 이 작품을 기억하는 남성 독자들의 관심에 힘입어 벌써 1만권이나 팔렸다.
‘눈길’도 꾸준히 찾고 있으며, ‘스밀라의…’는 출판 6개월 만에 1만권 이상 팔려 10쇄까지 찍었다. 열림원 김수진 편집팀장은 “ ‘겨울나그네’의 경우 김수현씨의 드라마 ‘사랑과 야망’처럼 20년이 지났지만 요즘 세대도 공감할 수 있는 코드가 있으며, 단순한 러브로망이 아닌 시대소설로도 읽힌다는 사실이 입증됐다”며 앞으로 20,30년 전 장안의 화제가 됐던 최인호씨의 다른 소설인 ‘별들의 고향’ ‘황홀연습’도 리메이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출판의 리메이크는 새로운 도서를 발굴하기보다는 이미 인기가 검증된 책으로 옛 독자들의 향수나 자극해 편안하게 수익을 노리려 한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오래 전에 나온 우수 문학들을 지금 세대에게 제공하고, 사회환경 때문에 실패한 좋은 책을 다시 살려낸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더구나 문학분야의 경우 한동안 화제를 모르는 작품이 나오지 않고 있어 ‘리메이크’ 바람이 올해의 ‘화두’가 될 만큼 더욱 거세게 불 것으로 보인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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