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퇴직금 지급에 쓰라고 준 돈을 임금인상에 쓰고, 승진을 마구잡이로 해줘 팀장 이상의 관리직이 전체 직원의 절반을 훨씬 넘는 공기업이 있다면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감사원이 2월20일부터 지난달 15일까지 25개 정부 산하기관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 결과, 이런 일들이 사실로 드러났다.
▦설립목적이 종료됐는데도 사업목적을 변경해 잔존하거나 ▦업무량이 줄었는데도 정원을 늘리고 ▦임금 변칙인상, 퇴직금 과다지급, 사내 복지기금 과다적립 등 온갖 한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감사원은 이 같은 예비조사를 토대로 3일부터 ‘정부산하기관 경영혁신 추진실태’ 감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감사대상은 전체 314개 정부산하기관 중 한국공항공사, 한국학술진흥재단, 한국마사회, 한국방송광고공사, 대한체육회, 국민체육진흥공단 등 규모가 크고 문제의 소지가 있을 95개 공기업. 지난해 감사를 받은 금융 및 건설 관련 정부산하기관은 제외된다.
예비조사 결과를 보면, A공사는 매년 순이익의 5%를 사내 근로복지기금을 적립, 임직원의 대학생 자녀가 B학점만 넘으면 등록금을 무상으로 지원했다.
지난해 79명의 대학생 자녀 중 61명이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이는 대학생 자녀의 학자금을 융자해주도록 한 정부 방침을 어긴 것이다.
B공단은 2004년 퇴직급여 충당금을 위한 정부출연금 400억원을 임금인상 재원으로 사용했다. 부족한 퇴직급여 충당금은 은행에서 빌려 쓴 뒤 공단의 기본자산을 매각해 갚았다.
결국 공단의 자산을 매각해 급여를 인상한 셈이다.
C연구기관은 승진을 남발, 지난해 12월 현재 팀장 이상 관리직이 208명으로 전체 정원의 58.4%를 넘어섰다.
이런 기형적인 구조 때문에 인건비 부담이 과중한 것은 물론 조직운영에도 장애가 생겼다.
D공단은 민간사업자들이 경쟁자로 등장해 적자가 누적되자 아예 민간사업자를 관리하고 수수료를 챙기는 관리업체로 둔갑했다. 이 공단은 지방자치단체 사업을 수의계약으로 따낸 뒤 이를 민간업체에 넘기고 수수료 명목으로 15~30%에 달하는 관리비를 받아왔다.
2000년 이후 이런 식으로 챙긴 수수료만 12억원에 달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정부 산하기관에는 여전히 방만한 경영 및 도덕적 해이가 만연해 있다”면서 “이들의 자율적 혁신은 한계가 있는 것으로 판단, 감사에 나서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신재연 기자 poet33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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