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휴가를 나왔다 사망한 나진영 이병의 아버지 나모(54)씨는 아직도 아들을 땅에 묻지 못하고 있다. 1998년 6월 해군에 입대한 나 이병은 그 해 9월27일 입대 100일 휴가를 마치고 귀대길에 올랐다. 하지만 나 이병은 다음 날 경북 김천시 집 옆 비상계단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유족들은 시신 발견 현장에 안경과 휴가증이 없는 점,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 생기는 외상이 없는 점 등을 들어 나 이병이 부대 내에서 타살된 뒤 집으로 옮겨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군은 나 이병이 13층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것이라며 이를 반박했다.
아버지 나씨는 군 당국과 싸우느라 회사까지 그만 뒀다. 나 이병을 민간병원에 안치했는데, 그 비용도 만만치 않다. 병원 측은 최근 1억원 넘는 안치료를 지불하라며 소송을 냈고, 나씨는 집과 자동차 등 전재산을 가압류 당했다. 그래도 나씨는 진실이 밝혀지기 전에는 장례를 치를 수 없는 입장이다.
대통령 직속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이해동 목사)는 올해 1월1일부터 15일까지 접수된 군내 의문사 사건 가운데 나 이병 사건을 포함한 11건을 재조사하기로 했다. 김호철 상임위원은 “직접 사인 외에 사망에 이르게 된 정황까지 규명해 유족들의 아픔을 달래 줄 것”이라고 말했다.
진상 규명 대상은 나 이병처럼 군에서 자살이나 변사 등으로 결론을 내렸으나 유족들이 이의를 제기하는 사건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재조사는 사건 당시 조사보고서에 1차적으로 의존하면서 부대원 등 관련자 진술을 듣는 순서로 진행되기 때문에 군 당국의 주장을 뒤집는 게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규명 대상에는 84년 6월 강원 동부전선 모 부대 전방초소(GP)에서 총기난사로 15명이 사망한 최악의 병영 사고도 포함돼 있다. 군사정권은 이 사건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는 바람에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것은 물론, 유족들도 11만여원의 보상금을 받고 입을 다물어야 했다.
당시 사고로 숨진 한주현 병장의 가족들은 “외손자를 잃은 할머니가 충격으로 돌아가셨지만 당시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고 증언했다.
김정곤 기자 j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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