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1일 오전 9시 항공우주연구원. 스마트 무인기 기술개발사업단의 임철호 단장, 김승주 실장, 김재무 책임연구원 등 연구진과 경력 20년의 한국 최고의 원격조종사 김성남 성우엔지니어링 사장이 모였다.
이들 앞에 놓인 것은 몸길이 약 1.5㎙의 모형비행기. 김 사장이 조종을 시작하자 모형비행기는 헬기처럼 위로 떠올랐다. 고도가 오른 후 비행기는 앞으로 전진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많이 흔들렸지만 그래도 10여분간 상공을 자유자재로 선회한 후 무사히 착륙했다. 연구진의 얼굴에는 미소가 흘렀다. “난다, 날았다!”
이 날의 비행 시험은 프론티어연구 사업의 하나인 스마트 무인기를 30% 규모로 축소 제작해 원격 조종으로 비행한 시험이었다. 물론 스스로 장애물을 피해가며 목적지에 다다라 임무를 수행하는 자동비행장치나 임무장비는 전혀 장착되지 않은 모형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수직이륙해 비행기처럼 나는 개념을 처음으로 눈앞에 실현해 보인 것이었다.
스마트의 모토는 ‘헬기처럼 이륙해서 비행기처럼 날아간다’이다. 활주로가 필요 없는 헬기의 장점과 헬기보다 고속 비행이 가능한 비행기의 장점만을 취한 새로운 개념이다. 그 비밀은 스마트의 양 날개 끝에 달린 회전날개. 헬기의 프로펠러와 같은 이 회전날개를 이용해 수직이륙한 뒤 각도를 꺾으면 고도를 바꾸면서 전진비행이 가능해진다.
이 같은 ‘틸트 로터(Tilt Rotor)’형 비행기는 세계적으로 50년 전부터 연구돼 왔지만 미국의 벨 헬리콥터사만이 유일하게 제품 개발에 성공했을 뿐이다. 헬기의 경우 연료 소모가 커서 최대 시속 240㎞로 2시간밖에 날지 못하지만 스마트는 최대 시속 500㎞, 5시간 비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02년 개발에 착수해 지금까지 개념 연구와 기본 설계, 상세 설계를 마치고 일단 30% 모형 검증에 성공한 사업단은 올해부터 본격 제작에 착수한다. 먼저 길이 2㎙인 40% 축소모형을 제작, 이달 말 또 다시 비행 시험을 갖는다.
40% 축소기에는 자동비행 소프트웨어가 담긴 컴퓨터도 탑재돼 혼자 날 수 있는지 처음으로 검증한다. 실물 크기 비행기는 2008년 하반기 비행 시험을 한다.
사실상 헬리콥터 개발 조차 라이센스 생산 경험밖에 없는 우리나라가 스마트 무인기를 개발하는 데에는 난관이 곳곳에 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자동비행 알고리즘. 풍동(風洞) 시험에서 바람 변화에 따른 동체 반응을 수없이 살펴봤지만 우리나라의 현 기술로는 추락 위험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김재무 박사는 “자동비행 제어기술은 미국의 업체(GST)와 공동개발을 하고 있지만 기술이전이 안 되는 수출금지 품목에 속해 순전히 어깨 너머로 기술을 획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론티어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틸트 로터’형을 적극 추천했던 벨 헬리콥터사도 최근엔 기술협력을 꺼리는 눈치다. 스마트는 이처럼 무인기 개발에 최고라는 국내 37개 기관이 모두 집결하고, 외국의 기술은 어깨 너머로 전수해가며 개발하고 있다.
2012년 스마트가 목표 성능을 갖추게 되면 사람이 직접 가기 어려운 산불 화산 지진 홍수 등을 관측하거나, 농작물 관리, 적조와 불법어로 감시, 농작물관리 등을 맡아 할 수 있다. 현재 무인기 시장은 90% 이상 군수용이지만 앞으로는 민간용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진은 무인기 4대, 관제시스템을 포함한 세트를 양산할 경우 가격은 약 200억원으로 계산하고 있다.
바닥부터 시작해야 하는 무인기 개발이 우리나라에는 왜 필요할까. 김승주 실장은 “스마트 개발은 20~30년 후 미래의 자가용의 원천 기술이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즉 도로 위에서 달리는 자가용이 아닌 자가비행기가 출퇴근 수단이 되는 시대가 곧 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비행기 운전을 전자동으로 맡겨놓고, 수직이착륙이 되니까 활주로도 필요 없다면 도로에서 씨름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대신 집집마다 옥상에 주차공간만 갖추면 되죠.” 연구자들은 자가용 비행기 개발의 기술적 어려움보다 하늘길을 표준화하고 교통법을 새로 제정하는 등 인프라 구축이 오히려 더 오래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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