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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성 성병비상/ (上) 당신의 자궁은 평안하십니까

입력
2006.04.04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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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S병원의 산부인과 전문의 최모(39)씨는 최근 환자 소개로 방문한 같은 교회 여성신자 4명을 검진했다가 며칠 뒤 나온 결과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이들 중 3명에게서 성병의 일종인 인유두종(人乳頭腫) 바이러스(HPV)가 검출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종류도 자궁경부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고(高)위험군에 속했다. 최씨는 남편들을 개별적으로 불러 “성접촉으로 감염되는 HPV는 부인에게 암을 일으킬 수 있다”며 문란한 성생활을 자제해야 한다고 단단히 주의를 줬다.

바이러스성 성병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여성에게 가장 흔한 암인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HPV 감염률이 크게 올라간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한국일보 기획취재팀이 국민건강보험공단, 질병관리본부와 강북삼성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차병원, 한양대병원 등 5개 병원의 HPV 및 성병 감염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여성 10명 중 2명 꼴로 HPV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강북삼성병원의 경우 2004년 전체 건강검진 여성 297명 중 16.5%(49명)에서 HPV가 발견됐으나, 2005년엔 1,797명 중 24.5%(441명)에서 검출됐다.

특히 성관계가 활발한 20, 30대의 감염률이 높았다. 서울아산병원은 20대 여성 감염률이 2004년 14.7%에서 지난해 15.8%로 올랐고, 강북삼성병원도 30대 감염률이 2004년 11.0%에서 지난해 23.0%로 급증했다. HPV 감염 여성의 80% 가량은 스스로 이겨내지만, 반복적으로 감염되거나 면역력이 떨어지는 10~20%는 자궁경부암 전단계인 이형증(異形症)이 되며 이 중 10% 정도가 암으로 발전한다.

최근 자궁경부암 발병 연령대가 20, 30대 젊은층으로 확산되는 것도 개방적인 성생활 탓에 HPV 감염률이 급증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 건강보험공단이 실시하는 무료 부인과 검진에서 이형증이 발견된 20~24세 여성은 최근 2년간 두 배나 급증했다. 역시 바이러스성 성병인 헤르페스(성기 단순포진)로 치료 받은 환자도 2002년 4만4,200명에서 지난해 6만9,500명으로 급증했다.

전문가들은 성병 바이러스가 확산되는데 대해 성개방 풍조로 성관계를 시작하는 연령이 급속히 낮아지고 있는데다, 2004년 9월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성병관리가 중단됐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성매매 여성의 HPV 감염률은 47%로, 일반 여성보다 훨씬 높다. 서울 동대문구보건소 관계자는 “성매매 금지 이전에는 매주 50명 가량의 직업여성을 검진했는데, 요즘엔 많아야 5~6명 정도”라며 “성매매 여성들의 성병관리가 거의 안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고재학(팀장)·조철환·이동훈·박원기기자 news@hk.co.kr

■ 性상대 많은 바람둥이 남성이 매개체

주부 A씨(46)는 최근 질 출혈로 서울 강남 모 산부인과를 찾았다가 의사에게서 자궁경부암 말기 선고를 받았다. 지금껏 별로 아파 본 적이 없다는 이유로 정기검진을 차일피일 미뤘던 게 화근이었다. 이어진 담당 의사의 원인 추정은 A씨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성관계로 전염되는 바이러스(HPV)가 원인입니다.” ‘바람’은커녕 계 모임도 제대로 나가 본 적 없던 그에겐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범람하는 성(性)의 물결 속에 HPV가 여성의 자궁을 위협하고 있다. 매년 우리나라 여성 10만 명당 3.5명이 자궁경부암으로 사망하며, 4,000~6,000명의 환자가 새로 발생한다.

현재 자궁경부암은 여성 암 발생률 4위이지만, 암 직전 단계인 이형증과 상피내암(자궁경부암 0기)을 포함하면 1위나 마찬가지다. 조기검진의 영향으로 암으로 진행되기 이전에 발견되는 여성이 늘어난 덕분에 1위 자리를 내준 것이다.

HPV는 오직 성 행위를 통해 전파되는 자궁경부암의 원인 바이러스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HPV의 위험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임질 매독 등 세균성 성병에 대한 경각심은 상대적으로 높지만, 바이러스성 성병인 HPV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게 현실이다.

특히 남성의 경우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HPV 16형이나 18형에 감염돼도 특별한 증상이 없다. 하지만 성매매 여성과 성관계를 가진 남성이라면 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바람둥이 남성은 자신도 모르는 새 자궁암 원인 바이러스를 여성들에게 퍼뜨리는 매개체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HPV는 젊은 여성일수록 치명적이다. 상피내암 판정을 받아 수술대 위에 누운 B(29)씨는 후회의 눈물을 쏟아야 했다. 외국 주재관으로 나간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생 때부터 여러 나라를 거치며 생활한 그는 다양한 국적 출신의 남자 친구가 많았고 비교적 자유로운 성을 즐길 수 있었다.

보수적인 집안의 남자를 만나 결혼한 후로는 조신하게 생활해 오던 터였지만, 부인과 정기검진에서 ‘암 이행 확률이 높은 고위험군 바이러스’인 HPV 16형과 18형에 감염됐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다행히 자궁 입구만 잘라내는 간단한 수술(원추절제술)로 완치가 됐지만, 자궁이 약해져 조산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진단이 나왔다. 결혼 후 간절히 ‘2세’ 갖기를 원하던 그는 젊었을 적 다양한 성 파트너를 갖는 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성매매 여성이 HPV에 걸릴 가능성은 일반 여성에 비해 3배나 높다. C(28)씨는 질염 치료를 받고자 얼마 전 산부인과를 찾았다가 자궁경부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17살 때 처음 남자와 성관계를 가진 C씨는 이후 ‘업소 여성’으로 일하며 서울 강남의 모 안마시술소에서 하루 7~8명의 남자를 상대 했다. 그는 20대 중반 업소 일을 접고 호프집 사장으로 변신해 결혼까지 했지만, 젊은 시절의 성매매 경험은 지금 그에게 천형으로 다가왔다.

전문가들은 너무 이른 나이에 성생활을 시작하는 것은 자궁경부암의 위험을 높이는 지름길이라고 경고한다. 여성의 10대 후반 혹은 20대 초반은 자궁의 모습이 갖춰지는 중요한 시기이다.

이 때 잦은 성관계를 가지면 암을 유발하는 인자가 쉽게 침투해 암으로 진행할 위험이 커진다. 분당차병원 부인암센터 이찬 교수는 “자궁암 환자들의 첫 성경험 연령이 자꾸 내려가는 추세가 우려된다”며 “자궁이 안정화단계에 접어든 20대 중반 이후에 성생활을 시작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과거에 비해 일상적이지 않은 성적 취향도 HPV를 퍼트리는 원인이다. 100종이 넘는 HPV의 일부는 구강성교, 항문성교를 통해 각각 구강암이나 항문암을 유발하기도 한다.

지난해 11월 스웨덴 말뫼대학 치과학과 연구팀은 “구강암에 걸리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추세인데, 이들 중 36%가 HPV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며 “구강성교를 통해 HPV에 감염된 사람은 구강암에 걸릴 가능성이 더 높다”고 밝혔다.

의사들은 ‘건전한 성생활’만이 확실한 대책이라고 지적한다. 성 배우자 교체를 자제하고 성생활을 일단 시작했으면 반드시 정기검진을 받아야 한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테레사산부인과 강경숙 원장은 “HPV의 확산은 여성 정조만 바라봐선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며 “남녀 간에 깊은 배려와 애정만이 서로에 대한 건강을 지켜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재학(팀장)·조철환·이동훈·박원기기자 news@hk.co.kr

■ 10, 20대 여성 특히 주의해야

우리나라 여성 생식기에서 발생하는 암의 80% 이상은 자궁경부암이다. 그래서 흔히 자궁암 하면 ‘자궁경부암’을 일컫는다. 자궁의 입구인 자궁경부는 외부의 균이나 해로운 물질과 접촉하는 부위로, 성관계에서 상처를 입기 쉽다. 성생활을 일찍 시작하거나 파트너가 여러 명인 경우 발생위험이 높아진다. 국내에선 파트너의 문란한 성생활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한가지 원인(HPV)으로 진행되는 유일한 암이다. 모든 자궁경부암 환자에서 HPV가 발견된다. 따라서 HPV에 감염되지 않은 건전한 이성과 관계를 맺거나 파트너의 수를 줄이는 게 최선이다. 콘돔도 바이러스를 완벽하게 차단하진 못한다.

10대 후반, 20대 초반 여성은 특히 주의해야 한다. 자궁이 급격히 커지면서 성장하는 단계로, 자궁경부의 모습이 변하고 세포 변형도 활발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강남성모병원 산부인과 박종섭 교수는 “미혼여성은 산부인과 검진을 받는 일이 거의 없어 암이 진행된 뒤에야 발견되는 비율이 높은 만큼, 젊은 여성도 성생활을 시작했다면 1년에 한번씩 자궁암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선진국에선 성경험이 있는 10대까지 자궁암 검진 권고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20세 이전에 성경험이 있고 4명 이상의 파트너가 있으면서 담배를 피우면 26배까지 자궁암 발생 위험률이 올라간다는 보고도 있다.

아직 성생활을 시작하지 않은 여성이라면 예방백신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다. 미국계 제약회사 MSD가 자궁경부암 환자의 60~70%에서 발견되는 HPV 16형과 18형의 감염을 100% 막아주는 예방백신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미 식품의약청(FDA)에 허가신청을 했으며, 6월 이전에 승인이 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서도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며, 빠르면 2007년부터 접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치료용 백신이 아니어서 기존 감염자에겐 효과가 없다. 성경험이 없거나 아직 HPV에 감염되지 않은 9~26세 여성이 접종 대상이다. 6개월에 걸쳐 세 번 맞아야 하는데, 1회용 백신 가격은 10만~30만원 선에서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고재학(팀장)·조철환·이동훈·박원기기자 news@hk.co.kr

■ HPV, 암 진행 길게는 20년 걸려

자궁경부암이나 성기 사마귀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로 지금까지 약 120종이 밝혀졌다. 오로지 성접촉(구강성교, 성기애무 포함)에 의해 감염된다. 이 중 자궁경부암의 주범인 16형, 18형이 전체의 65%나 된다. 성기 사마귀를 제외하면, 진행되기 전까지 특별한 증상이 없어 자각하기 힘들다.

바이러스가 체내에 들어온다고 해서 모두 감염되는 것은 아니다. 유전적으로 바이러스를 잘 받는 체질이거나 임신, 면역력 저하, 흡연 등이 감염 위험을 높이는 요인이다. 남성은 자궁경부암의 원인 바이러스를 옮기는 역할만 할뿐, 아무런 증상도 나타나지 않는다. 감염돼도 금방 사라지거나 피부 밑으로 잠복하기 때문에, 감염 남성이라도 HPV가 검출될 확률은 50% 미만이다.

감염 여성의 80%는 1년 내 바이러스가 사라진다.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감염을 통해 암으로 진행되려면 짧게는 5년, 길게는 20년 이상 걸린다. 따라서 조기 검진이 중요하다. 이형증이나 상피내암 단계에서 ‘자궁경부 원추절제술’이라는 간단한 수술을 받으면 완치가 가능하다.

고재학(팀장)·조철환·이동훈·박원기기자 new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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