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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부 칼럼] 슬픈 전설의 82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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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부 칼럼] 슬픈 전설의 82페이지

입력
2006.04.04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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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역의 병상에 있는 분에게 고통스런 기억을 떠올리는 누(累)가 될지도 모르겠다. 천경자 선생이 보낸 사신을 펴본다. 15년 전의 편지다.

<진작 감사하다는 편지를 드리고 싶었지만, 10여 년 동안 편지 쓴 일이 드물어 펜이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저를 믿고 변치 않는 동정의 붓을 들어 주신 은혜를 잊지 못 하겠습니다. 그간 깊은 늪에 빠져 있는 저의 불행한 사건이 가끔 제 식도 부근에 둔통을 줄 때가 있습니다.< p>

그러나 제 건강에 이상이 없는 한, 저는 이전 잡힐 듯 하면서 안 잡혔던 작품에의 염원, 보다 차원이 다른 작품세계에 들어갈 지 모른다는 새로운 희망을 가져 봅니다. 또한 이 나이에 진짜 이상한 인간사회의 공부를 많이 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은 워싱턴의 둘째 딸 집에서 쉬고 있습니다… 1991. 6>

●투병 속 열린 천경자 회고전

카드에 쓴 편지는 근황을 간결하게 전하고 있었다. ‘불행한 사건’은 ‘미인도’ 가짜그림 사건을 가리킨다. “내 그림이 아니다”라던 그는 거의 고립무원 상태에 있었다. 그림을 소장한 국립현대미술관은 신경질적으로, 화랑협회는 갈팡질팡하면서도 진품이라고 주장했다. 미술 평단도 침묵하는 가운데, 가짜라는 견해를 밝힌 평론가는 김삼랑씨 뿐이었다.

검은 삼태기를 뒤집어 쓴 것처럼 부자연스런 머리형태와 불안하기 그지없는 꽃장식, 무의미하게 비어 있는 어깨 부분 등이 균형미와 색채, 필세에서 분명히 위작이라는 것이었다. 그 후 다른 사건으로 체포된 권모씨가 자신이 ‘미인도’를 위조했다고 고백했다. 8년을 끌어온 수수께끼가 풀릴 희망이 비친 것이다. 그에게 ‘미인도’를 다시 그려 보게 해서 위조 역량이 있는지를 검증했으면, 충분히 진위가 가려졌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진위 검증을 피했다. 그 무렵 작가는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한 후, 뉴욕의 큰딸 네로 가서 지금까지 머물고 있다. 당시 평론가가 좀더 소신껏 행동했다면, 그리고 위조범의 범행 고백을 진지하게 검증했다면, 우리 사회에서 이중섭 가짜 그림사건 등 유사한 사건이 재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에는 이름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실려 있다. 김기창씨가 “천경자는 팽팽한 비단이 찢어지는 소리 같다”고 말하자 그는 개명 의사를 비친다. 그러자 박고석씨가 “이름을 바꾸면 절교요”라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미수에 그쳤다. 수필가로도 명성을 날리던 그에겐 그림 제목도 중요했다. ‘미인도’라는 구식 제목은 애초부터 그의 감성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의 전시회 ‘내 생애 아름다운 82페이지’가 끝났다. 또 한 차례 천경자 바람이 불었다. 노 화가에 대한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은 식지 않았다. 두꺼운 전시 도록과 함께 자서전ㆍ작가론집 등이 재발간됐고,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길례언니’ ‘황금의 비’ '꽃을 든 여인’ 등 기존 채색화를 판화로 만든 작품들은 초반에 모두 팔렸다.

그는 우리의 거칠고 메마른 현대사를 재능과 열정, 용기로 이겨낸 낭만의 예술가다. 그만큼 개성적이고 독특한 예술세계를 이룬 작가도 드물다. 그의 채색화들은 화려하고도 고독하고, 쓸쓸하면서도 화사한 여성작가의 내면풍경을 섬세하게 드러내 보임으로써 매혹적이다. 이번 전시회에 출품된 스케치와 미완성 작품들은 그가 작품을 탄생 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이는가를 보여 주었다.

●노 화가에의 사랑 식지 않아

치료비 마련을 위한 전시회이고, 또 생전의 마지막 전시회일지도 모른다는 보도는 슬픔을 주었다. 그러나 성황리에 판화들도 매진됐다는 소식에서는 작은 위안을 얻는다. 허망하고도 깊은 상처를 받았으나, 이제는 그가 ‘미인도’라는 악연의 한 페이지를 떨쳐버릴 때가 된 듯하다. 시간의 도도한 흐름 속에 어느덧 그 악연은 한 예술가의 탁월성을 제 방식으로 빛내주는 액세서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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