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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우리詩·우리말의 창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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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우리詩·우리말의 창문을 열다"

입력
2006.04.04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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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의 문장가 고종석씨가 ‘모국어의 속살’(마음산책)이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시인공화국 풍경들’이라는 이름으로 2005년 3월부터 1년 가량 한국일보에 실은 글을 모은 것이다. “우리 신문학 백년사에서 제 방 하나를 너끈히 가질 만한” 시인 50명의 시집을 한 권씩 소개하며, 그들이 이룬 문학적 성취와 문학사적 의미, 시집이 도두보인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전한 글들이다.

그는 책 머리에 “이 책은 그 시집들과 독립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글무더기에 지나지 않는다…(이 책으로 하여 독자들이) 서점의 시집 매장에 발을 들여놓는 버릇을 들였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그 말처럼 그의 글은 시들의 ‘속살’을, 그 감촉과 향기와 광휘를 충실히 옮긴다. “한국 현대시문학의 수원지일 뿐만 아니라 가장 높은 봉우리 가운데 하나”라 높인 소월의 ‘진달래꽃’, 그 “언어의 생채(生彩)를 통해, 1920년대 정주와 그 언저리는 입체감 넘치는 홀로그램을 얻었다”고 평한 백석의 ‘사슴’, “한국어가 감당할 수 있는 감각의 가장 아스라한 경지”라 찬한 서정주의 ‘화사집’ ….

하지만 책의 매력은, 그가 어루만진 ‘시의 속살’ 못지않게, 아니 때로는 더, 탐스러운 저자의 손길의 운용, 그 애무의 형식에 있다. 이 책에서 그가 선택하고 운용하는 낱낱의 단어와 문장들은 그 엄정함과 아득한 격조로 독자를 감동시킨다. 그 감동은 아마 ‘감염된’ 한국어의 굳은살에 가해지는 치유의 자극일 것이다.

그 매력은 그리고 “(저자의) 개인적 독서 체험이 짙게 반영”된 이런 대목들이 있어 감칠맛을 더한다. 가령, 김영승 시인의 시집 ‘반성’의 시 한 편(‘반성608’)을 옮긴 뒤에 그는 이렇게 썼다.

“이 시를 읽는 내 마음은 하염없이 후들거린다. (…)그에게 세대적 연대감을 느끼고 있는 나는, 문득 20년 저편의 전장(戰場) 어느 곳에 부상당한 그를 떨어뜨려 놓고 와버린 몰인정한 전우가 된 느낌이다.” 또 그는 이성복의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의 빼어난 시들을 쭉 거론한 뒤 “그렇지만, 오래 전 이 시집을 처음 읽었을 때 내 몸 속 깊이 박혀 지금까지도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시행은 ‘연애에 대하여’의 마지막 연이다(내 나이에 좀 주책스럽긴 하다)”라 적는다.

“내 살아 있는 어느 날 어느 길 어느 골목에서/ 너를 만날지 모르고 만나도 내 눈길을 너는 피할 테지만/ 그날, 기울던 햇살, 감긴 눈, 긴 속눈썹, 벌어진 입술,/ 캄캄하게 낙엽 구르는 소리, 나는 듣는다”

이 책이 저자가 그간 표나게 지향해 온 모국어에 대한, 문학에 대한, 사무치는 애정에서 나온 것임은 자명하다. 그리고 이 책은 모국어를 향한 뜨거운 구애이고, 그 자체로 애정의 표징이며 또 매혹적인 표적이다. 그의 글이 지닌 그 치명적인 아름다움이, 머리말에서 밝힌 바 독자들을 시집 매장으로 이끄는 ‘삐끼’로서의 역할에 누가되지 않을까, 살짝 걱정스럽기는 하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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