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와 권련남용 의혹에 휩싸여 사임압력을 받아온 탁신 친나왓 태국 총리(56)가 조건부 퇴임 의사를 3일 밝혔다.
탁신 총리는 이날 총선 결과와 관련, 의회구성 지연으로 인한 혼란 극복 등을 위해 사회 저명인사로 구성된 독립적 기구 '국가화해위원회'의 구성을 제안했다.
그는 국가화해위원회가 자신의 퇴임을 결정하면 이를 수용하겠다고 덧붙였다. 탁신 총리의 이 같은 제안은 2개월간 지속된 정치혼란의 종식과 국민화합 도모를 위해 용퇴할 것이란 관측과 어긋나는 것이다.
앞서 2일 치러진 조기총선에서 탁신 총리가 이끄는 타이락타이당(TRTㆍ애국당)은 유권자들의 높은 기권율로 껍데기 뿐인 승리를 얻는데 그쳤다.
야당의 선거 보이콧으로 278곳에 단독 출마한 애국 당은 400개 선거구 가운데 349곳에서 당선자를 냈으나 많은 지역구의 득표율이 기권란 기표율을 밑돌았다.
투표에 참여하되 기권란에 기표하자는 시민단체와 야당의 '기권투표' 캠페인이 유권자들을 움직인 결과다. 39개 지역구에선 애국 당 후보 지지율이 선거법상 최저 당선 득표율인 20%에 못 미쳐 재선거가 불가피해졌다.
지역적으로 볼 때도 애국당은 탁신 총리의 고향인 북부지역을 제외하면 중남부 지역에서 고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태국 선관위는 기권란 기표율이 애국당 후보 득표율을 웃도는 선거구가 3분의 2를 넘으며, 방콕에서 투표자의 50.1%가 '기권란'에 기표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2월 탁신 총리는 사임압력과 비판여론을 피하기 위해 조기총선 카드를 내놓고 총선 득표율이 50%를 넘지 못하면 물러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야당의 보이콧으로 사실상 찬반 투표가 된 이번 총선에서 애국당 득표율은 50%를 약간 상회한다고 탁신 총리측은 주장했다. 그러나 외형상 총선 승리에도 불구하고 탁신 총리로선 정치적 입지가 더 좁아졌다.
투표로 확인된 민심이반과 약 40개 지역구에서 당선 유효 득표 20%를 얻지 못해 의회구성에 차질을 빚은 것은 탁신 총리에게 결정타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의회구성이 되지 않으면 차기 총리선출과 내각출범이 자연 지연돼 정국은 당분간 진공상태를 벗어나기 힘들어진다. 그러나 탁신 총리의 조건부 사퇴는 정국 혼란 확대를 막기 위한 전격 사퇴 예상에서 한참 후퇴한 것이다.
야당의 사퇴 압박과 시위는 더 거세질 예상이다. 일부 외신들은 탁신 총리가 다시 술수를 쓰고 있다고 비판하고, 한동안 태국이 탁신 총리의 '유산' 처리 문제로 안개 속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탁신 총리가 물러나면 후임에는 솜킷 부총리와 포킨 파나쿤 부총리가 거론되고 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