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성과 박래군. 둘 다 박씨지만 너무도 다른 길을 걸어 온 사람들이다. 두산그룹의 총수였던 박용성씨는 한동안 대한상공회의소의 소장으로 심심하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개혁정책과 사회운동들을 직설적으로 비판해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명과 함께 보수언론들로부터 각광을 받았었다.
그리고 미스터 쓴소리라는 이미지와는 대조적으로 일가들과 함께 수백억원의 회사 돈을 횡령해 흥청망청 쓰며 원없이 사치를 누렸다. 박용성씨가 이처럼 양지를 누비고 있을 때 박래군씨는 우리 사회의 음지를 말없이 뚜벅뚜벅 걷고 있었다.
●두 박씨의 상이한 행보
박씨는 인권운동의 불모지였던 우리 사회에서 소위 재일교포형제간첩단사건의 피해자인 서준식씨와 함께 한국인권운동의 중심인 인권운동사랑방을 키우고 인권운동에 모든 것을 바쳐왔다.
반인권과 부패의 상징적인 사회복지시설이었던 에바다 농아원의 비리재단에 대항해 장애인들의 인권을 지키다가 재단이 퍼부은 똥물을 뒤집어써야 했고 양심수, 장애인, 이주노동자, 성적 소수자, 구속수감자 등 최소한의 인권이 침해당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그리고 그는 지난 달 조백기 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와 함께 경기도 평택 대추리의 한 논두렁에서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미군기지 평택 이전에 대해 농민들은 대대로 내려온 삶의 터전인 농토를 지키겠다며 협의매수에 응하지 않고 논갈이에 들어갔다. 그러자 노무현 정부는 크레인을 동원해 논을 파헤쳤고 박래군씨와 조씨는 농민들의 평화적 생존권을 지켜주기 위해 크레인에 올라가 농토파괴 행위를 저지한 것이다.
두 박씨의 대비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잘 알려져 있듯이, 검찰은 수백억원의 회사 돈을 횡령한 박용성씨에 대해 불구속기소하는 배려를 아끼지 않았고 법원 역시 집행유예를 선고해 박씨는 감옥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그런데 박용성씨를 불구속 기소했던 검찰이 박래군씨와 조씨에 대해서는 공무집행을 방해했다는 죄명으로 기소를 하면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또 박용성씨에 집행유예를 선고했던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함으로써 이들을 감옥으로 보냈다.
이에 수많은 사회단체들이 대책위를 만들어 항의했고 급기야 국가인권위원회까지 나서 이들의 구속은 “구속요건을 전혀 갖추지 못했고 유엔결의안에도 위배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러자 법원은 다음날 마지못해 이들을 전격 석방하기로 결정했다. 구속 2주 만에 일단 석방이 됐다고는 하지만 이들은 아직도 재판을 받아야 하며 이번 사건은 사법부의 한심한 현실을 다시한번 실감하게 한다.
우선 힘없는 사람들의 권리가 침해당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이들과 함께 해야 할 운명인 인권운동가의 인권옹호행위를 사법적으로 처벌하려는 것 자체부터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설사 기소를 하더라도 당연히 불구속 기소를 해야 할 이들을 검찰과 법원이 구속했던 이유이다. 이는 천정배 장관이 천명한 참여정부의 방침, 즉 인권을 고려해 가능한 불구속 기소를 원칙으로 한다는 방침과 배치된다.
특히 참여정부는 증거 인멸과 도주의 위험을 구속수사의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는 바, 증거 인멸과 도주의 위험이 없는 적극적인 신념의 옹호자라는 것이 누가 보아도 명백한 인권운동가들을 검찰과 법원이 한통속이 되어 구속한 것은 가히 엽기적이다.
●한심한 사법부 조치에 한숨만
수백억원을 횡령하여 생활비 등으로 쓴 것은 불구속 감이지만 농민들의 생존권 투쟁을 도운 것은 구속 감이라니 어이가 없다.
왜 검찰과 법원은 국민들로 하여금 대한민국에 정이 떨어지게 만들고 국민들을 체제부정세력으로 만들지 못해 이처럼 안달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한총련이 아니라 검찰과 법원이야말로 대한민국을 무너트리려고 몸부림치는 체제전복세력이 아니고 무엇인가?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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