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여름 우리는 계속해서 욕심을 냈다. 16강이 최대 목표였는데 이를 달성하자 바로 ‘내친 김에 8강 가자’라고 외쳐댔고, 8강을 이루자 ‘반드시 4강을 이루자’고 했다.
기적같이 4강을 이루고 나자 ‘이젠 우승이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나는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라고 생각했다. 결승에 진출하지 못하면 온 나라가 슬픔에 잠길 태세였다.
●우승 못해도 박수친 우리의 모습
2006년 봄, 우리는 또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WBC라는 생소한 대회였지만 일본을 극적으로 격파하면서 ‘미국도 이겨보자’라는 욕심을 냈고, 우리 스스로도 믿기지 않게 미국을 이기고 나니 ‘일본도 꼭 한 번 다시 이겨야 한다’고 했다. 일본을 또 이기자 우리는 ‘내친김에 우승까지 하자’고 했다. 나는 또 생각했다. 만약 우승하지 못하면 온 나라가 슬픔에 잠길 지도 모르겠다고.
그러나 2002년에도, 2006년에도 우리는 어느 누구도 슬픔에 잠기지 않았다. 내 생각이 어리석었던 것이다. 우리가 냈던 욕심은 욕심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귀여운 바램 정도였던 것이다. 그 귀여운 바램의 최종 결정판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누구 하나 슬퍼하지 않았다. 그 대신 최선을 다해 뛰어준 그들을 위해, 온 몸의 기를 가득 모아 응원한 우리 스스로를 위해 박수를 쳤고 건배를 했다.
성숙한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할 때 무엇을 달성했느냐보다 그 무엇인가를 달성하기 위해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가를 중시한다. 그래서 최선을 다한 사람만이 진정한 승리자라고 믿는다.
우리는 2002년에도 2006년에도 선수들이 이루어낸 4강이라는 업적보다 그 과정에서 보여준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박수를 칠 줄 알았다. 이제 우리 사회가 어떤 이가 진정한 승리자인지를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우리의 성숙함은 우리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갖게 해주고 있다.
21세기에 들어 서구의 가치들이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 유럽, 미국 할 것 없이 폭력이 난무하고 있어 합리성을 서구의 가치로 내세웠던 서구 지식인들을 당황스럽게 하고 있다.
한국사회도 지식인들이 보기에는 항상 위기이다. 그리고 그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항상 ‘서구는 이렇게 저렇게 대비를 이미 다 하고 있다. 우리도 이 모델을 본받아야 한다’라고 아직까지 말한다. 이 얼마나 자신감이 결여된 소리인가.
저녁 9시 이후에는 총기사고의 위험 때문에 집 밖을 나서는 것이 무서운 미국 대 도시보다, 어두컴컴한 지하철 안에서 언제 부랑자들에게 가해를 당할지 몰라 염려해야 하는 유럽 대 도시보다, 비록 이쁘지도 않고 참으로 시끄럽기는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 정이 있고 믿음이 남아있는 우리가 사는 이 곳이 조금은 더 낫지 않은가.
●스스로에게 자신감 가져야
소득 2만불 달성, 경제선진국 진입. 우리의 최대의 목표처럼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것들을 목표로 하지는 말자. 우리가 더 행복해지기 위해 그 과정에서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가를 두고 훗날 우리 스스로가 진정한 승리자였는지를 평가하도록 하자.
최항섭ㆍ정보통신연구원 디지털미래연구실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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