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포로 일가족 3대가 17개월 동안 5차례로 나눠 연쇄 탈북에 성공, 7명 모두 자유의 품에 안겼다. 다행히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됐지만 이들의 탈출기는 어떤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었다.
북송 50년만에 닿은 소식
이기춘(75)씨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국군에 입대했다가 중공군에 잡혀 북으로 끌려갔다. 남쪽 가족들과 떨어져 산 지 54년이나 지난 2004년 6월. 함경북도 청진시에 살던 이씨 집에 낯선 남자가 찾아왔다. 자신을 탈북 안내인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을 건넸다. “남쪽의 조카가 삼촌을 찾고 있다”는 것이었다.
떨리는 마음을 억누르고 그를 따라 중국 접경 지역인 함북 회령으로 간 이씨는 수화기 너머로 남쪽의 조카 이모(47)씨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조카의 설득에 이씨는 탈북을 결심했고 부인 김상옥(69ㆍ사망)씨를 비롯한 가족들도 흔쾌히 동의했다.
2전 3기 첫 탈북
죽음을 각오한 모진 마음을 먹었지만 쉽지 않았다. 북한 땅을 벗어나기 직전 국경경비대에 체포되기를 두 차례. 총살을 모면한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전략을 바꿨다. 가족을 일단 남겨두고 몸을 가볍게 해 자신부터 탈북하기로 했다.
두 번이나 탈북에 실패해 요주의 대상에 올랐던 터라 경비대에 뇌물을 주고서야 겨우 국경을 넘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시시각각 옥죄오는 북의 삼엄한 감시망과 중국 공안의 불심검문에 숱한 고비를 넘겼다.
안내인을 따라 중국 옌지(延吉)를 거쳐 베이징(北京) 주재 한국영사관에 당도하기까지 걸린 기간만 3개월. 그가 납북된 국군포로임을 확인한 정부의 협조 아래 이씨는 마침내 2004년 11월 남한 땅을 밟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남은 가족을 구하라
2005년 초 조카를 따라 부산에 정착하자마자 이씨는 남은 가족들을 데려올 계획을 짰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부인 김씨에게 은밀히 구체적인 탈출 경로와 방법을 일러준 덕에 부인은 무사히 중국으로 넘어왔다.
순탄할 듯 보였던 김씨의 탈북은 아찔한 위기를 맞기도 했다. 옌지에서 그만 중국 공안에 붙잡힌 것. 중국 정부의 탈북자에 대한 강제 송환 소문을 들은 터라 상황이 급박했다. 다행히 우리 정부의 기민한 대응으로 무사히 남편과 재회했다.
연이은 성공에 고무되자 남은 가족들의 탈북에도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지난해 9월 둘째딸 복실(36)씨 내외가 이씨의 탈북 경로를 따라 부모와 상봉했고, 복실씨의 아들 고일혁(3)군도 같은 해 12월 안내인을 따라 일단 옌지로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뒤 이어 올해 1월 마지막으로 이씨의 막내딸 복희(33)씨가 아들 김선군(2)군을 데리고 중국에서 조카 일혁군과 합류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 3명은 선양(瀋陽)의 한국영사관을 거쳐 31일 새벽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극비리에 입국, 지난 2004년 11월 이후 각각 탈북해 남한에 정착한 가족과 감격적인 상봉을 했다.
지난해 11월 교통사고로 아내를 먼저 떠나 보내고 후유증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이씨는 이들의 입국 소식을 듣고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도 함께 살 수 있게 됐다니 꿈만 같지만, 이렇게 좋은 날을 보지도 못하고 떠난 아내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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