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임씨의 소설집 ‘네 마음의 푸른 눈’(문학동네ㆍ9,500원)에는 모두 11편의 작품이 실려있고, 그 작품들은 인물들의 황량한 동공으로 하여 닮아있다. 그들이 응시하는 것, 망막에 맺히는 상들은 그들의 시선이 이미 놓쳐버린 것들을 연상케 하는 매개이거나 차마 놓지 못하는 상처의 흔적으로 각인된다.
그들의 응시는 때로는 주체의 의지와 무관하거나 심지어 의식으로부터도 벗어난 듯 보인다. 그래서 그 긴, 그리고 푸석한 응시 끝에 드물게 배는 동공의 물기를 두고, 그것이 눈물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섣부르다. 그들은 틀림없이 흐느끼고 있지만, 그로 하여 젖은 동공이 자신의 황량함을 씻어내지는 못한다. 해서 그의 인물들은, 작품들은, 슬프다.
그들의 슬픔의 연원을 캐묻는 것은, 그래서 조심스럽다. 곁에 멀찍이 앉아 그들이 바라보는 것들을 함께 응시할 밖에. 그러다가, 낙엽 타는 모닥불의 온기에 유순해진 자폐의 아이가 툭 던지는 말 한 마디-낫씽 이즈 리얼(Nothing is real)–를 다만 듣고, 온 존재의 무게감을 실어 고개 끄덕여줄 일이다(표제작).
그들은 길 위를 떠돈다. 현실 속에 있으면서도 현실을 부정하며 그 너머의 위안을 찾고자 하는 몸부림처럼, 중세 프랑스의 고성(古城),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언덕, 둔황석굴, 지방 바닷가를 헤맨다. “몸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끊임없이 기억을 뒤로 데려가는”(‘성이 의미하는 것 또는 아무것도 아닌 것’ 192쪽) 열차를 타고, “그렇게 한번 소리 죽여 울기 위해 비행기를”(‘문어에게 물어봐’ 44쪽) 탄다.
친밀감이 끝내 고통을 수반하는 감정임을 아는 그들에게 떠난다는 것은 도피다. ‘푸른 모래’의 주인공인 ‘그녀’는 동굴벽화에 사로잡혀 사막 한가운데 석굴 사원의 벽화 재현 작업에 무려 10년의 세월을 바치고 갓 귀국한 화가다. “사막에서의 십년, 그녀에게 더 이상 두려울 것은 없었다. 다만, 그녀는 사막이 아닌 세상, 직접적으로는 그, 사람이 두려웠다.”(281쪽)
불의의 사고로 약혼자를 잃은 ‘그녀’처럼 그들의 기억 속에는 죽음처럼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의 아픔들이 내장돼있다. 나아가는 몸의 길 위에서 그 상실의 아픔들은 회진하는 기억을 통해 떠돎의 에너지가 된다. 그 에너지는, 소진되기 전까지는 몸을 정처의 바깥으로 떠미는 엔트로피다. 그들에게는 견고하게 축조된 성(城)마저 “떠도는 사람, 찾아 헤매는 사람, 떠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의 집”(199쪽)이다.
아늑한(?) 모랫바람의 품에서 돌아온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는, 미지의 인물이 보내 온 한 통의 편지. “푸른 모래 너머로 태양이 안식하는 곳, 당신을 이 곳으로 초대합니다.”(280쪽) 그리고 홀린 듯 ‘그’를 만나러 내려간 부산 청사포(靑沙浦) 바닷가. “그의 등을 쓸어 내렸다. 그의 등이 깨어나고, 서서히 움직일 때마다 그녀는 떨어지는 모래 알갱이를 보았다.
모래 알갱이가 떨어지고, 쌓이고 쌓여서 산이 되었다. 그는 움직이는 모래산, 그녀는 길 하나가 산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284쪽) ‘그녀’가 그 사라진 길 위에서, 그 모래산 안에서 ‘이제야 비로소’(‘작가의 말’에서) 제 울음을 울었으면 좋겠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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