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아파요.” “우주가 죽어가고 있어요.” “이젠 어떡하죠?” 하지만 환경문제를 다룬 책이 아니다. 미국 워싱턴 대학의 고생물학(피터 워드) 및 천문학(도널드 브라운리) 권위자인 두 교수가 지구와 우주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예측한다. 상상을 자극하는 예언이 아니다.
고생물학과 천문학의 결합에서 짐작하듯 과거의 증거들로 현재를 설명하고, 엄밀한 과학의 프리즘을 통해 ‘그날 이후’를 재구성한다. 지구와 우주에 관한 빈틈없는 논픽션 다큐멘터리, 우주생물학(astrobioligy)이다.
어두운 방(캄캄한 우주)에 왜소한 노파(조그만 지구)가 누워 있다. 노환이다. 심해진 장기마비와 탈수는 관절염과 혈행장애로 인한 통증마저 잊게 한다. 몸의 면역체계가 박테리아와의 싸움에 나서지만 번번이 패하는 횟수가 잦아진다. 80이 넘은 나이는 3시간의 수술도 버거웠다.
항생제와 체액이 공급되고 소변을 받아내는 호스가 삽입된다. 구토가 이어지는 가운데 기도에 꽂힌 튜브를 통해 호흡기가 허파에 산소를 밀어넣는다. 반은 인간이고 반은 기계인 상태다.
첨단 의료기기에 둘러싸인 노파의 고통은 심해져 간다. 면역계를 지원하던 항생제는 심장과 배설기관에 부담을 준다. 생명을 지키기 위해 몸은 스스로 아드레날린 등의 호르몬을 마구 분비한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기력과 에너지를 갉아먹고 있다.…심장이 멈추고, 모든 장기는 박테리아가 지배할 것이다. 몸뚱이는 물과 불에 의해 눈에 보이지 않는 파편으로 변해 흩어질 것이다.
고생물학자와 천문학자는 수많은 과학자들의 논문과 조언을 인용ㆍ분석해 이 왜소한 노파의 탄생ㆍ성장ㆍ생활ㆍ사망을 전기와 같이 보여주고, 진단과 처방, 장례와 그 이후까지 깔끔하게 조언해 준다.
그들의 배려는 병상 곁에서 그녀가 좀더 살아있기를 기원하며 고통과 투병을 함께한 아들 딸 손자손녀를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지구의 삶과 죽음을 분석한 과학서지만 지구의 소중함과 인류의 앞날을 생각하는 철학의 향기가 곳곳에 배여 있다.
지구의 ‘그날 이후’를 SF영화처럼 묘사한 대목에서는 전율을 느낄 것이다. 수십~수백m 높이의 빙하가 뉴욕의 마천루를 불도저와 같이 밀고 나간다. 뜨거운 먼지폭풍의 육지를 피해 동물들은 바다 속으로 바다 속으로 하염없이 밀고 들어간다. 하지만 그 곳은 이미 박테리아 아메바 등 단세포 생물들의 영역이다.
5~6억년 전 생명체가 바다에서 나와 진화했던 양상의 역순이다. 옛날의 필름을 거꾸로 돌리는 듯하다. 동물보다 먼저 지구상에 나타났던 식물들이 뒤를 따른다. 원인 중 하나가 이산화탄소임을 알게 되는 순간 독자들은 숨 한번 내뱉기조차 주저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공포는 길지 않다. 20세기 두 개의 함수 중 하나인 드레이크방정식(다른 하나는 아인슈타인의 E=mc²), 지구의 공전궤도를 확장해 태양열을 피하는 중력교환이론 등이 제시되고, 화성 목성을 경유해 토성으로 이주하는 방편도 언급된다. 이 방안들은 이미 수백~수천년 전에 이미 인류가 궁리했던 것임을 고생물학적으로, 천문학적으로 증명해 준다. 역시 과학은 희망이다.
정병진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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