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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음모론이 횡행하는 사회

입력
2006.04.0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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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개구쟁이 스머프’란 TV만화가 있었다. 벨기에 작가 피에르 클리포드 원작으로 1980년대 한국과 미국 등 세계 30여개국 어린이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이 작품은 알다시피 파란색의 난쟁이 스머프들의 이야기다.

파파스머프의 지도 아래 행복하게 사는 이들이 외부 마법사로부터 마을을 지키는 경쾌한 에피소드들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이게 공산주의자들의 음모라는 설이 떠돌아 평론가들이 진지하게 논쟁을 벌인 적도 있다.

스머프(Smurf)란 이름부터가 ‘Socialist Men Under Red Father(붉은 지도자가 이끄는 사회주의자들)’의 약자이며, 화폐도 없고, 같은 옷차림에 공평분배가 이뤄지는 등의 마을 모습이 공산주의적 이상사회를 영락없이 닮았다는 것이다. 나아가 주인공 누구는 스탈린을, 누구는 트로츠키를 형상화한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한편의 코미디 같지만 그렇다고 한낱 실소에 부칠 일만은 아니다. 지금도 무슨 일이 터지기만 하면 유사한 형태의 음모론이 반드시 고개를 들기 때문이다. 예컨대 ‘황우석 음모론’은 그의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여전한 현재진행형이다.

그의 몰락을 노린 거대한 배후세력이 있다는 것으로 줄기세포를 둘러싼 관련 학계와 업체들의 이권싸움, 미래핵심산업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잡기를 원치 않는 미국과 영국의 조종, 종교적으로 황 교수 연구의 진전을 결단코 막아야 하는 기독교계의 개입 등이 그 내용이다.

●대개 결과를 역추측한 것에 불과

거물 금융브로커 김재록 사건에서도 검찰의 수사 전반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 예의 음모론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검찰이 정치권의 ‘군기’를 잡기위해 벌이는 무력시위라는 것 정도는 초보적이고 애교 띤 분석에 가깝다. 하지만 시나리오는 정권 차원의 음모로까지 나아간다.

전직 고위경제관료인 L, P씨 등이 고건 진영에 합류하는 것을 막기위해 벌인 수사다, 또는 김씨가 과거 민주당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웠다는 점을 들어 정동영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혹은 서울시가 수사대상에 오른 데서 보듯 이명박을 타겟으로 하고 있다는 따위의 얘기들이다. 애초부터 삼성 측의 제보로 수사가 진행됐다는 얘기도 한때 무성했다.

일견 그럴듯해 보일지 모르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사로 인해 누가 가장 피해를 보고, 또는 누가 가장 이득을 볼 것인가’라는 간단한 예측에 입각한 연역적 추론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말하자면 대개의 음모론이라는 것들은 예상되는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의도’를 설정해 놓고 이를 마치 사실적 인과관계인양 과도하게 포장한 것에 다름아닌 것이다.

사실보다는 의견이나 해석에 가까운 것이어서 당연히 현실적으로는 그 진위여부 판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반박 또한 성립되지 않는다. 게다가 뭔가 남과 다른 내밀한 정보원에 접근해있다는 심리적 쾌감도 한몫하고 있어 음모론의 확산은 제어할 방도가 마땅치 않다.

●이젠 버려도 될만한 과거 사고방식

그러나 현 정권이 다른 것은 몰라도 정치문화의 투명성을 크게 높였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부터 거대음모론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더욱이 이런 식의 음모론은 모든 사안을 모의, 조작하는 몇몇 강력한 개인이나 집단의 존재를 설정해야 성립이 가능한데 현 정권이 그 동안 보인 여러 ‘능력’으로 볼 때 무엇보다 이 대목에 별로 신뢰성을 두기 어렵다.

지시와 복종이 통하지 않는 이 정부와 검찰의 관계를 봐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번 수사에서 의도가 개입된 것으로 보이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검찰의 독자적 판단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매사 음모론이 횡행한다는 것은 사회가 그만큼 건강하지 못하다는 징표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현상이나 정보들이 사실은 누군가에 의해 왜곡된 것이라는 불신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늘 이 정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지만 이런 음모론의 생성까지 그 쪽 책임으로 돌릴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 모두가 구시대에 학습된 사고시스템을 관행처럼 재작동하고 있지 않은가를 반성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은 최소한 그런 시대로부터는 벗어나 있는 것 같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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