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Weekzine Free/ 떠나자 - 경주 남산 - 천년 신라의 추억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Weekzine Free/ 떠나자 - 경주 남산 - 천년 신라의 추억

입력
2006.03.31 00:04
0 0

‘사사성장 탑탑안행(寺寺星張 塔塔雁行)’이라. 절은 하늘의 별만큼 많고 탑은 기러기들이 줄지어 서있는 것 같다. 경주 남산을 일컫는 말이다.

경주 남산을 보지 않고 경주를 다녀왔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한다. 1,000년의 신라를 품었고 지금껏 그 신라가 살아 숨쉬는 서라벌의 진산(鎭山)이다.

금오봉(468m)과 고위봉(494m)이 능선을 잇는 남산은 동서로 4km, 남북은 9km인 길쭉한 타원형의 생김새다. 높이나 규모로 보면 뭐 별거냐 싶지만 돌도 많고 골짜기도 많은 ‘작지만 큰’ 산이다.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난 나정이 남산 자락이고, 신라의 종말을 가져온 포석정이 또한 남산에 깃들어 있다. 남산에는 왕릉이 13기, 절터가 147곳이 있고 불상 118기, 탑이 96기, 석등이 22기 등 발견된 문화유적의 수가 672개에 달한다. 유네스코는 ‘살아있는 박물관’ 남산을 2000년 12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신라인은 왜 이 남산에 그토록 많은 부처를 새겨놓은 것일까. 불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신라인들은 남산의 바위 속에 신들이 머물며 백성을 지켜준다고 믿었다.

이후 불교가 전래되고 나서 바위 속의 신들이 부처와 보살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순정한 믿음 하나로 단단한 화강암을 쪼아낸 신라인들은 바위에 부처를 새긴 게 아니라 바위에서 부처를 끄집어낸 것이다. 신라의 많은 설화들은 남산에 사는 부처와 보살이 이따금씩 산에서 내려와 권세 있는 자들의 나태함을 호되게 꾸짖고 서민들의 아픔을 보듬어 준다고 말한다.

● 칠불암과 신선암

박제되지 않은 ‘살아있는 신라’ 남산을 오르는 길, 우선 봉화골의 칠불암 코스를 택했다. 진달래가 유난히 곱다는 골짜기다. 남산의 동편 자락 통일전에 차를 대고는 한참을 걸어 산길에 들어섰다. 보문호 주변 벚꽃나무에는 아직 벚꽃이 피지 않았는데 남산의 진달래는 이제 막 흐드러져 분홍의 물감을 노송 사이사이에 흩뿌리고 있다. 꽃잎 하나를 따서 입에 물었다. 혀끝에 스미는 달착지근함. 봄의 맛이 입안을 맴돌았다.

산길이 깊어지며 진달래의 자취가 차츰 잦아들고 대신 노란꽃들이 얼굴을 내비친다. 꼭 산수유를 닮은 생강나무 꽃이다. 50분쯤 걸었을까 시원한 물맛의 약수터가 나왔고 이곳부터는 경사가 급해지며 작은 대나무인 시누대 숲이 펼쳐졌다. 빽빽한 시누대 터널을 지나 하늘이 열리면서 조그마한 절집이 나타났다. 칠불암이다.

넓지 않은 마당에 석탑 하나 서있고 그 뒤로 7분의 부처와 보살이 바위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높은 절벽을 등진 삼존불 앞에 사각의 바위가 놓여졌고, 그 바위의 각 면에도 불상이 새겨져 있다. 남산의 눈부신 바위 절벽과 어우러져 웅장함이 느껴지는 조각상들이다.

칠불암 위 깎아지른 절벽 위에는 신선암이 있다. 신선암으로 오르는 길은 무척 가파르다. ‘헉헉’ 거리는 거친 숨소리는 낭떠러지 위 좁은 바위 난간을 지나며 탄성으로 바뀌었다. 경주의 넓은 들을 내려다 보며 깊은 생각에 빠져든 부처가 바위에 그림을 그려넣은 듯 자리하고 있다.

아침 안개가 짙을 때는 신선암 바로 아래 골짜기 까지 안개 바다를 이룬다고 한다. 신선암이라는 이름이 아니더라도 이곳에 서면 모든 이들이 신선이 되는 기분이리라. 그래서인지 신선암의 부처는 연꽃의 좌대가 아닌 구름 모양의 좌대에 올라 앉았고, 다리도 편안히 풀어헤치고 있다.

● 삼릉곡

남산 답사의 가장 기본이 되는 곳은 삼릉계곡이다. 10기 이상의 가장 많은 부처를 만나는 코스다. 삼릉곡 산행은 삼불사에서 시작한다.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의 미소를 품은 배리 삼존불이 길에서 가깝다.

서산의 마애불이 보호각을 철거하니 미소가 사라졌다고 하던데, 이 배리 삼존불은 보호각이 설치되며 미소를 잃었다. 바위에 새겨진 부처의 표정은 햇살이 그려넣는 것인데 그 햇살을 받지 못하니 얼굴은 언제나 무표정이다.

삼불사를 지나 삼릉 앞 아름다운 솔숲 터널을 통해 산으로 오른다. 맨 처음 만나는 부처는 목 없는 석조여래좌상. 조선시대 억불숭유정책에 희생된 부처다. 목을 자르면 부처의 생명도 끝이 난다고 여긴 것일까. 이 불상 옆에는 이제 막 바위에 내려서는 듯한 마애관음보살이 서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화장을 한 듯 입술이 불그스름하다. 채색불상이다. 온몸에도 색이 칠해졌을 텐데 다 벗겨지고 유독 입술에만 남은 것이다.

힘있는 붓으로 한번에 그려낸 것 같은 선각육존불을 지나면 찬기운을 뿜어내는 계곡 가에 석굴암의 부처를 닮은 늠름한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떨어졌던 불두를 다시 이어 붙이느라 얼굴에는 시멘트로 빚은 성형수술 자국이 있다. 등 뒤에 있던 현란한 무늬의 광배가 부서진 채 복원을 기다리고 있다.

삼릉계곡의 정점은 상선암이다. 남산의 불상중 좌불로는 가장 큰 마애불상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머리와 어깨는 바위 밖으로 튀어나왔는데 아래 부분은 바위 표면에 선으로?묘사하고 있어, 마치 바위 속에서 부처가 모습을 드러내는 그 순간을 포착한 느낌이다.

부처의 오른쪽 귀 뒤편 바위 틈에는 작은 진달래 나무가 자라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진달래꽃을 귀에 꽂은 부처는 언제 또 내려와 세상을 다독이려는가.

경주=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여행수첩/ 경주 남산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경주IC를 빠져 나오자 마자 오릉 있는 데서 우회전, 35번 국도를 타면 남산을 끼고 남쪽으로 달릴 수 있다. 나정과 포석정지를 지나면 바로 배리삼존석불이 있는 삼불사다. 삼릉이 가까이 있다.

칠불암 코스는 국립경주박물관을 지나 7번 국도를 타고 남으로 내려가다 통일전 방향으로 우회전해 들어가면 된다. 통일전을 지나면 마을이 나오고 산불감시원이 지키고 있는 통제소가 나타난다. 통일전에 주차하거나 좀더 마을 길을 달려 마을 안 공터에 차를 세울 수 있다.

남산은 코스가 많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지만 여러 갈래인 산길에 제대로 된 이정표도 없다. 초행자는 길을 잃기 십상이다. 남산을 제대로 알려면 전문가와 함께 답사하는 것이 좋다. 남산연구소는 매주 일요일과 공휴일 무료 남산문화유적 답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삼릉-용장을 잇는 서남산코스, 국사골 지바위골을 지나는 동남산코스, 열암골 새갓골 칠불암을 도는 남남산코스, 음력 보름 전후 달밤에 남산을 찾는 달빛기행 등 4가지 코스다.

매주 1코스씩 답사가 이뤄진다. 행사 2일 전까지 전화(054-771-7141)나 홈페이지(www.kjnamsan.org)에 예약해야 한다. 보다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을 때는 전문 안내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유물의 자세한 설명과 함께 재미난 설화 등을 들을 수 있다. 유료(12만원)로 진행된다.

경주 보문단지에 한화 에톤콘도가 새로 문을 열었다. 기존의 콘도(담톤) 옆에 지어진 에톤 콘도는 지상 8층에 200실 규모다. 온천수를 이용한 워터파크 ‘스피링 돔’을 갖췄다.

이곳에서는 클럽메드의 GO(Gentle Organizer)를 벤치마킹한 PO(Program Organizer)서비스가 실시된다. PO란 춤과 노래, 연주, 마술, 연기, 스포츠 등 각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과 기량을 보유한 만능 엔터테이너로, 이들은 리조트를 찾은 고객에게 리셉션부터 환송까지 다양한 재능과 프로그램으로 즐거움을 안겨주는 역할을 한다.

경주에 벚꽃이 만발하는 31일부터 4월15일까지 객실 1박과 스프링돔 2인 이용권을 포함, 평일패키지 16만6,000원이고 이 기간을 제외한 비수기는 주중(일~목) 9만9,000원, 주말 16만원이다. (054)777-8900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