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is creative person? Do you have any idea? If you get it, come to the board and write it.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요? 혹시 생각 나는 사람 있어요? 있으면 앞으로 나와서 칠판에 한번 써보세요)”
거침없이 말하는 원어민 선생님을 쳐다보던 아이들. 서로 눈치만 살피다가 선생님이 다시 말을 반복하자 한 친구가 감을 잡았는지 눈을 반짝인다. “아~~~, 오케이.” 알아들은 모양이다.
옆 친구가 거든답시고 “알면 칠판에 나가서 적으라고 하시잖아!” 한국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선생님은 “I can hear some Korean, Which team was it? Minus one point. I told you guys, No Korean!(어디서 한국말이 들리는데, 어떤 팀에서 했죠? 마이너스 1점입니다. 여기선 한국말 안 쓰기로 한 걸로 아는데…)”하고 경고를 줬다. 친구들을 도와주려다가 하필 한국말이 툭 튀어나오는 바람에 낭패를 본 그는 같은 팀 친구들에게 오히려 폐를 끼치고 말았다.
다른 팀 친구들은 “Yes!” 쾌거를 부르며 희희낙락이다. 그의 실수로 소중한 1점을 앞섰으니까. 아이들이 수업시간 진행되는 게임에 일희일비하는 이유는 이곳 화폐(English Village)로 주는 5달러(5,000원 상당)의 상금 때문이다. 일반 상점에서는 쓸 수 없지만 이곳 서점에서는 이 돈이면 영어 교재 한 권을 살수 있으니 말이다.
Cinderella: “I want to go to the party too.(나도 파티에 가고 싶어요)”
Fairy godmother: “Don’t cry Cinderella, I will help you go to the party!(울지마, 신데렐라. 파티에 갈 수 있게 내가 도와줄게)”
Cinderella: “Really? Oh, thank you. Fairy godmother.(정말이에요? 고마워요)”
Fairy godmother: “You’re welcome, Go to the party.(별 말씀을. 파티에 다녀와)”
이곳은 연기 수업실, ‘신데렐라’ 연습이 한창이다. 드라마를 전공한 남아프리카 출신 엘리자베스 클로브레(29)선생님의 리얼한 연기를 학생이 놓치지 않고 그대로 따라 했다.
2팀으로 나뉘어 4명씩 무대에 올라가 아이들이 연기를 했다. 주인공역을 맡은 한 친구의 재미난 표정연기와 서투른 영어대사에 구경하던 친구들은 책상을 치며 까르르 웃어댔다. 연기만 배우는 게 아니다. 분위기에 따른 연기법과 무대 장치 등 전문적인 이론까지도 배운다.
영어만 쓰는 별난 마을, 경기영어마을 파주캠프 ‘잉글리시 빌리지(English Villiage)’의 수업 광경. 4월 3일 문을 여는 이곳은 말 그대로 작은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다. 서구 대학가를 연상시키는 이곳의 크고 작은 43개 건물 외관은 고풍스런 영국 스타일이다. 입구에 아기자기하게 늘어선 커피숍과 바, 레스토랑, 서점에는 외국인들이 물건을 팔고 있다. 한국어로 말하면 물건을 살수가 없다.
상점들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니 ‘시청(City hall)’이 보인다. 영어마을에 웬 시청? 알고 보니 이곳에 들어오려면 일단 출입국 사무소를 거쳐야 했다. 이곳에 오는 순간부터 여긴 단순히 경기도에 있는 영어마을이 아니라 국가 개념의 ‘잉글리시 빌리지’ 인 것이다. 입국신고서를 작성하고 방문 이유 등을 묻는 원어민과의 영어 인터뷰를 통과해야만 입국할 수 있다. 외국으로 연수 갈 때 거치는 과정과 다를 게 없다.
길거리에는 외국인들이 활보하고 한국 학생들과 원어민 교사 그룹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그들은 팀별로 영화와 뮤직비디오를 촬영중이란다. 정식 개원을 앞두고 20~25일 이곳에서 시범교육을 받고 있던 경기 구리여중 2학년 학생 200명의 표정은 대체로 환했다.
만나는 아이들마다 공부가 재미있다니, 이 얼마나 듣던 중 반가운 소리인가. 소풍 나온 아이처럼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다. 눈빛도 달랐다. 수업은 원어민 선생님과 게임형식으로 진행되니 즐겁고 쉬는 시간은 우르르 파란 눈의 선생님을 쫓아 다니며 영어로 말 붙이기에 바쁘다.
“우리가 그냥 단어만 떠듬떠듬 연결해도 선생님들은 다 알아들어요. 한국 선생님들처럼 그것도 못하냐고 무섭게 혼내지도 않고요, 뭐든지 모르면 친절하게 가르쳐주니까 너무 좋아요. 그치?” 배수민(15)양이 옆에 있던 권수진(15)양을 쿡 찌르자 얼른 말을 이어받는다.
“응. 맞아요. 선생님들이 꼭 친구 같아요. 우리 팀은 지금 왕따 이야기를 담은 ‘아웃사이더’란 뮤직 비디오를 제작중이에요. 학교에서는 공부만 시키잖아요. 내가 직접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작업이 얼마나 설레는 일이지 아마 모르실 거예요.” 그들은 잔뜩 들떠있었다.
경기도와 경기도영어문화원이 경기 파주시 탄현면에 8만 4,000평 규모로 세운 경기영어마을 파주캠프는 전국 47곳에 이르는 영어마을 중 최대 규모인 850억 원을 투자했다.
43동의 건물은 그냥 영화 세트 같은 가건물이 아니다. 대리석으로 제대로 지은 진짜 건물이다. 원어민 강사가 100명, 거리공연이나 상업시설 종사자를 비롯한 기타 외국인이 70명, 한인 교사가 50명에 이른다. 원어민 강사는 인터넷 접수를 받은 후 세 번의 인터뷰를 거쳐 뽑았고 이 가운데 13명은 공연 예술가로 전문분야를 가르친다.
강사 제이미 모르스(32ㆍ호주 출신)씨는 "처음에는 쑥스러워하고 낯을 가리기도 하지만 몇 시간만 지나면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영어를 써요.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재미있는 커리큘럼을 구성하는 데 힘을 쏟고 많이 듣고 말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죠"라고 말했다.
인터뷰 중에도 아이들은 'Teacher, Teacher'하며 선생님의 팔목을 잡고 늘어진다. 며칠 동안 함께 있으면서 친해진 기색이 역력했다. 수업이 끝난 후에도 광장에서 선생님과 게임이 계속됐다.
한국놀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연상시키는 'What's the time Mr. Wolf?' 놀이. "Teacher, is this right? (선생님, 이거 맞죠?)", "I'm so hungry. (너무 배고프다)", "That was your fault. (이건 네 잘못이잖아)" 게임 중에도 여기저기서 짤막한 영어 문장이 쏟아졌다.
"창피하냐고요? 아니오! 선생님들이 창피를 안 주니까요. 이젠 습관이 돼서 잘 못하더라도 무조건 영어로 말해요." 미국인 선생님과의 대화가 신기하기만 하다는 김나연(15)양의 말이다.
공예반에도 한번 들어가 봤다. 선생님이 학생들을 3팀으로 나누고 고무찰흙과 마른 스파게티면을 나눠줬다. 그리고 그것으로 가장 탄탄한 건축물을 지어보라고 했다. 주어진 시간은 15분.
정확히 그 시간이 되니 일렬 수거해 작품을 교탁 위에 놓고 강도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실험방법은 작품 위에 자석을 하나씩 쌓는 것. "How much weight do you think your structure will hold?(너희들이 만든 건축물이 무게를 얼마나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요?)" 강사들의 영어 질문은 쉴새 없이 쏟아진다. 자석이 아슬아슬하게 하나씩 더 올라갈 때마다 팀별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수업이 놀이의 연속, 영어공부가 재미있을 수 밖에 없다.
체험용으로 만들어진 우체국과 은행, 경찰서, 병원도 흥미를 더한다. 실제 운영되는 시설은 아니지만 그곳을 방문하면 실제 상황을 연출해 전문용어를 배우고 원어민과 대화하게 된다.
영어 배우러 멀리 미국이나 캐나다까지 날아갈 필요가 없어졌다. 한국에 녹아 든 작은 영어마을 '잉글리시 빌리지'에서 미국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파주=조윤정기자 yjcho@hk.co.kr
■ 파주 캠프/ 제프리 존스 원장 "신나게 놀게합니다"
경기영어마을 파주캠프의 제프리 존스(54) 원장.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 중 이 사람을 모른다면 ‘스파이’다. 외국과의 통상으로 돈을 버는 내국인도 마찬가지다.
변호사이면서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낸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외국인 중 하나다. 한국을 ‘우리나라’라고 표현할 만큼 대표적인 친한(親韓) 외국인이기도 하다. 법률가이자 상공인인 그가 교육자라는 새로운 분야에 뛰어 든 것이다.
제프리 존스 원장은 오래 전부터 한국에 75% 이상 영어로 진행하는 초ㆍ중ㆍ고교 설립을 꿈꿔왔다고 한다. 기러기 아빠의 양산이 가져오는 경제적ㆍ사회적 조류독감을 막으려면 한국에 제대로 된 영어교육 시스템을 확립 시켜야 한다는 포부이다. 850억 원이라는 거액을 쏟아 부은 경기도가 그의 꿈과 경제인으로서의 경륜에 충분히 매력을 느꼈을 듯하다.
존스 원장의 오랜 구상은 이제 실행에 들어갔다. “잉글리시 빌리지는 영어를 가르치는 곳이 아닙니다. 영어에 흠뻑 취하게 만드는 곳입니다.”그의 영어 교육 컨셉은 바로 ‘펀(fun)’이다.
그는 짧은 기간 큰 교육효과를 내려면 어떤 요법을 써야 할 지 고민하다가 ‘흥미를 유발시켜야 한다’는 결론을 냈다. ‘영어=괴로운 것’에서 ‘영어=신나고 재밌게 노는 것’이라고 인식을 바꿔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한국교육 방식은 너무 재미없어요. 토익과 토플 점수만 잘 받으면 뭐 합니까? 말은 한마디도 못하고 외국인 앞에만 서면 모두 주눅이 드는 걸요.”
존스 원장은 영어교육을 전공한 원어민 강사 100여명을 뽑아 그들과 한국인에게 맞는 영어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아이들이 재미를 느끼게 하기 위해 게임 위주의 수업방식으로 커리큘럼을 짜고 그들과 밀착돼 어울리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또 소극적인 아이들에게는 강사가 먼저 다가가 대화를 유도하도록 주문했다. 그가 강사들에게 강조하는 3가지 원칙은 ‘안전하게’, ‘재미있게’,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다.
“영어를 가르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세상에서 나도 경쟁할 수 있고 대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워주는 게 목적입니다. 미술이나 영화나 음식 등 원하는 분야를 통해 영어는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는 것이죠.”
파주캠프의 성공여부는 국내 다른 지자체는 물론 영어를 제2외국어로 배워야 하는 다른 나라에서도 초미의 관심사다. 벌써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하려는 움직임이 국내외에서 일고 있다. 존스 원장은 챙길 건 챙기고 베풀 건 베풀겠다는 생각이다. “외국의 경우에는 유료로, 국내 지자체에 대해서는 무료로 교육 콘텐츠와 관련 노하우를 전달할 계획입니다.” 상공인 출신 원장다운 면모를 읽을 수 있다.
조윤정기자 yjcho@hk.co.kr
■ 경기영어마을 파주캠프 교육프로그램
프로그램은 1일, 1박2일, 5박6일, 방학 2주와 4주 코스 등 다양하다.
일단 정규 수업시간으로 인정하는 ‘5박6일’ 코스는 경기도 내 중학교 2학년만 대상으로 하며 추첨으로 학교를 선발한다.
지역 구분 없이 보호자를 동반한 가족을 대상으로 한 주말 1박 2일 코스는 온 가족이 원어민 선생님과 댄스나 요리 등을 배우는 일정으로 꾸며져 있다.
경기도내 초ㆍ중학생을 위한 방학 2, 4주 코스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1일 체험도 준비돼 있다. 로봇을 직접 만들거나 장난감 등 전시물을 직접 만지고 놀면서 영어를 배우는 식이고 다양한 인종과 언어, 문화, 종교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다문화 게임’, ‘문화음악공예’, ‘다문화쿠킹’ 등도 체험할 수 있다. (031)956-2323, www.english-village.or.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