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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브로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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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브로커

입력
2006.03.30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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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백악관의 어느 방이라도 마음대로 들락거릴 수 있는 미 정계 최고의 로비스트이자 숨은 실력자다. 200여 명의 변호사를 거느리고 보수만 두둑하다면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는 그의 별명은 ‘권력 브로커’. 그렇게 잘 나가던 그는 첩보위성을 원격조종할 수 있는 프로그램 거래에 손을 댔다가 러시아 이스라엘등 각국 첩보기관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와 은밀한 거래를 주고 받았던 대통령은 CIA의 압력 때문에 그를 사지로 내몬다. 지난해 국내에도 소개돼 인기를 끌었던 존 그레샴의 첩보스릴러 ‘브로커(The Broker)’의 주요 스토리다.

▦ 브로커는 상거래에서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해 주는 중개인을 뜻한다. 보험중개인, 부동산중개인, 통관중개인, 증권중개인 등이 대표적인 브로커들이다. 중개를 주업무로 하는 기업은 중개회사(Brokerage)라고 부르며 증권회사가 흔히 이렇게 불린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브로커가 사기성이 있는 거간꾼 정도의 부정적 의미로 쓰이고 있다. 특히 최근 각종 비리사건에는 브로커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들은 기업 등 누군가의 의뢰를 받고 권력자나 공무원에게 청탁해 이권을 따내거나 유리한 결정을 이끌어내는 이권 중개인이다.

▦ 법조계, 경찰, 군 등의 고위인사 수백명과 형님 동생 사이로 지냈다는 법조브로커 윤상림씨에 이어 이번에는 경제계를 쥐락펴락 했다는 금융브로커 김재록씨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거물급이라는 호칭에 걸맞게 두 사람은 주로 최고위층 인사들을 상대하며 그들 못지 않은 위세를 부렸다.

피라미 브로커와의 결정적 차이는 뇌물을 바치고 청탁을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판ㆍ검사, 경찰간부로부터 수천만원씩 돈을 뜯어내는 간 큰 행각이다. 경찰 2인자가 “험담을 할까 봐 멀리하지 못했다”고 실토할 정도로 윤씨는 고위인사들의 약점을 파고들어 쥐고 흔들었다.

▦ 중개인은 수요자와 공급자 간의 정보흐름이 투명하지 않거나 원활하지 못할 때 폭리를 취하게 된다. 간혹 복잡한 농산물 유통구조로 인해 농민과 소비자 대신 중개인의 배만 불리는 사례가 그렇다. 브로커가 판치는 사회는 권력과 국민 사이의 의사소통이 마비된 상태다. 참여정부가 외치는 투명한 국정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늘 속에서 이뤄지는 검은 거래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로비의 양성화를 적극 검토할 때다. 때마침 국가청렴위원회가 일정한 기준을 마련해 로비를 양성화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고 하니 계기도 마련된 셈이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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