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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리 논란으로 짚어본 가요계 표절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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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리 논란으로 짚어본 가요계 표절 실태

입력
2006.03.30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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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리의 ‘겟차(Get Ya)’를 둘러싼 표절 시비가 가열된 가운데, 해외 유명곡을 무단 사용한 뒤 사후 협의를 통해 저작권 문제를 해결한 사례가 알려져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대중음악계 스스로 표절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선 표절 후 협의'는 관행?

29일 한국음악저작권협회(KOMCA)와 직배 음반사 등에 따르면 god의 ‘어머님께’(1999), 싸이의 ‘새’(2001), 왁스의 ‘머니’(2001) 등이 외국 곡을 무단 사용했다가 원저작권자측이 문제를 제기하자 사후 협의를 통해 저작권 로열티를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규태 KOMCA 계장은 “과거에는 제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원저작권자를 찾기 힘들어 이런 경우가 종종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선(先) 표절 후(後) 협의’ 방식은 표절을 용인하는 방법으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원저작권자의 항의가 없으면 그대로 묻힐 수 있고, 수익 배분을 하더라도 그것이 총 음원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복잡한 공식 절차를 밟기보다는 표절을 하고 사후 협의를 통해 수익배분을 하는 것이 오히려 유리한 비정상적인 상황인 것이다.

한국은 표절 사각지대

이 같은 현상은 한국 대중음악 시장의 독특한 특성에서 비롯된다. 현재 국내에는 표절 여부를 심의하는 별도의 기구가 없고, 원저작권자가 직접 고소를 해 법정에서 표절 여부가 가려진다. 그러나 지금까지 표절 시비가 인 곡 가운데 소송까지 간 예는 없다.

‘Get Ya’의 표절 대상으로 거론된 브리트니 스피어스 ‘Do Something’의 국내 저작권 관리자인 유니버설 퍼블리싱 코리아의 조규철 대표는 “표절 대상 원곡들은 대부분 미국 일본 등 한국보다 음악시장이 훨씬 큰 국가의 히트곡들”이라면서 “표절이 의심되더라도 드는 노력에 비해 얻는 것이 너무 적어 소송을 피한다”고 말했다.

‘Do something’의 원저작자가 ‘Get Ya’에 대해 “표절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고 다소 모호한 표현을 쓴 것도, 소송보다는 협상을 통한 저작권 로열티 배분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는 국내 음악계가 표절시비를 두려워하지 않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소송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잠깐 논란만 피하면 된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최근 표절 시비에 오른 곡들의 작곡가들이 원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샘플링 또는 트렌드를 따른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 있다.

서울음반의 김홍기 마케팅팀장은 “표절 판정이 나지 않는다 해도 듣자마자 다른 곡이 떠오른다는 것은 부끄러워 해야 할 문제”라며 현재의 상황을 악용하는 일부 음악인의 행태를 꼬집었다.

표절, 윤리에서 비즈니스 문제로

이 같은 음악계의 관행도 문제지만, 표절과 관련한 명확한 규정이 없는 것이 더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적된다. 외국 음반 직배사들의 모임인 한국음반출판사협회(KMPA)는 29일 표절과 샘플링, 리메이크 등에 관한 기준을 제시하고, 한국 대중음악계의 인식전환을 촉구했다.

문제가 불거지고 나서야 수습에 나설 것이 아니라 사전에 합리적인 절차를 밟아 해외 저작권자의 음원을 사용하고 음원 사업의 수익구조를 투명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KMPA측은 특히 “해외 음반 직배사의 이익뿐만 아니라 한류를 통해 해외 음원 수익을 거둬들이고 있는 국내 음반사들을 위해서도 표절에 관한 기준 정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 동안 일부 작곡가의 윤리 문제로 치부되던 국내 대중음악계의 표절 문제가 명확한 기준과 원저작권자와의 협의가 우선시되는 비즈니스가 된 것이다. ‘Get ya’의 표절 논란은 한국 대중음악계가 국제 음악시장의 기준을 따라야 할 시점에 왔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 표절 관련 용어

●샘플링

특정 곡의 일부를 발췌해 다른 작품의 일부분으로 사용하는 것. 이 경우 작곡ㆍ작사자와 음반제작자, 가수ㆍ연주자의 허락을 각각 받아야 한다. 이런 절차를 무시한 무단 샘플링은 길이와 사용 형태에 관계없이 저작권 침해(표절)다. 단, 애초에 샘플링을 위해 제작된 샘플 CD를 구입해 쓴 경우는 예외다. 저작권 지분 문제는 원저작권자와의 협의를 통해 결정한다.

●리메이크

어떤 음원을 편곡만 달리해 다시 녹음하는 것. 외국에서는 보통 '커버 버전'이라 하며, 이중 원곡의 가사를 다른 언어로 번역하거나 다른 언어의 가사를 붙이는 경우 '번안곡'이라고 한다. 커버 버전과 번안곡은 개사자나 편곡자의 저작권 지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국제 관례다. 역시 원저작권의 허락이 없으면 무단도용에 해당한다.

●트렌드

원래는 음악계 전반의 유행을 뜻하는 것으로, 브라운 아이드와 SG워너비 등 남성 R&B 그룹의 음악들은 비슷하게 들리지만 표절이 아니라 트렌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트렌드냐, 표절이냐는 음악적으로 깊게 분석하지 않으면 판정이 어려워 표절에 대한 변명으로 악용될 소지도 있다. 이 경우 소송으로 가거나 양측이 협의해 합의를 끌어내는 방법밖에 없다.

강명석 객원기자 lennone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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