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원(KAIST) 이사회가 7월로 임기가 끝나는 로버트 러플린 총장과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연임이 허용되던 일반 관례에 비추어 사실상 '도중하차' 색깔이 짙다. 2004년 7월 취임 때 커다란 기대를 모았던 그의 씁쓸한 퇴장은 교수회와의 갈등이 직접적 원인이다.
지난해 말의 '사립화' 구상이나 최근의 연구실적 평가 방안 등으로 수시로 교수회와 마찰을 빚었다. 이를 두고 교수회의 '한국적 태도'나 반개혁적 자세를 지적하기도 한다. 러플린 총장 스스로도 좌절된 실험에 대해 그런 진단을 내리고 싶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도자가 조직 구성원들을 묶어내는 데 실패하고, 그 때문에 빚어진 갈등으로 허송세월을 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주된 책임을 져야 한다. 특히 KAIST나 한국과학기술의 잠재력을 폄하하고, 연임 반대 교수들을 "연구실적이 떨어지는 반개혁 세력"으로 몰아붙이거나 학내행사를 소홀히 한 것은 너무했다. 흔히 말하는 '문화차이'를 인정하더라도, 그런 차이의 해소 또한 그의 몫이다.
따지고 보면 이런 갈등은 애초에 과학적 명망에 끌려 그를 영입하면서, 검증된 능력 범위를 넘는 역할을 기대했던 데서 예정돼 있었다. 199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에 빛나고, 스탠퍼드대 응용물리학과 교수로서 후진 양성 능력도 검증된 그를 한국 과학계가 탐내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조직의 지도자로서의 능력이 검증된 바 없는 그에게 대학 운영을 맡기고, 그것도 모자라 안정유지 차원을 넘어 개혁을 통한 비약까지 기대한 것은 지나쳤다. KAIST를 MIT와 같은 종합 사립대학으로 바꾸어 나가겠다는 엉뚱한 구상 등이 다 그래서 나왔다.
유명 연예인에게 연기지도를 맡길 수는 있지만, 곧바로 예술대학 운영을 맡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국인ㆍ외국인이 다를 바 없다. KAIST 이사회, 나아가 과기부가 앞으로 새 총장을 선임하면서, 이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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