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미국에 대한 보고서 '크래쉬'와 '시리아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미국에 대한 보고서 '크래쉬'와 '시리아나'

입력
2006.03.30 00:07
0 0

올해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 각본상 편집상 등 주요 상을 받은 ‘크래쉬’와 조지 클루니에게 남우조연상을 안겨준 ‘시리아나’는 다른 듯 하면서도 꼭 빼닮은 영화다.

두 영화는 다층적 이야기 구조를 도입해 여러 인물들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세상의 틀을 어떻게 만들어가는지를 모자이크 맞춰가듯 정밀하게 담아낸다. 무엇보다 두 영화는 미국의 해묵은 사회 문제인 인종 갈등과 석유 이권을 둘러싼 미국 정부의 추악한 이면을 가감 없이 드러내 ‘미국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미국의 정체 까발리기

‘크래쉬’는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여러 인종의 충돌을 통해 다인종 국가인 미국이 안고 있는 뿌리 깊은 갈등을 파헤친다. 흑인에 대한 피해의식에 젖어 공권력을 과도하게 행사하는 경찰 라이언(맷 딜런), 흑백 차별을 천형처럼 여기며 백인을 향해 이유 없는 범죄를 저지르는 흑인 청년 피터(라렌즈 테이트)와 앤소니(루다크리스 브리지스), 흑인 청년에게 차를 강탈 당한 후 유색 인종에 대해 병적인 경계심을 보이는 진(산드라 불록) 등 15명의 등장 인물이 36시간 동안 얽히고 설키며 만들어내는 충돌은 미국사회의 축소판이다.

특히 인종적 편견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던 신참 경찰 핸슨(라이언 필립)이 흑인을 사살하는 장면은 작은 오해가 살인을 부르고, 살인은 결국 증오를 낳고, 증오는 또 다른 오해를 불러오는, 미국내 갈등의 악순환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크래쉬’가 로스앤젤레스라는 제한된 공간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반면 ‘시리아나’는 세계를 무대로 석유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적 음모와 배신, 그리고 테러를 퍼즐처럼 펼쳐나간다.

은퇴를 앞두고 있다가 조직에 의해 배신을 당한 CIA 요원 반즈(조지 클루니),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정치를 펼치고 싶어하는 한 중동 산유국의 왕자, 자기 입맛에 맞는 정권을 세우려는 미 정보부의 암약과 테러를 위해 목숨을 저버리는 이슬람 청년의 사연들이 서로 무관하게 흘러가는 듯 하면서도 결국 하나로 만나 큰 이야기 줄기를 형성한다.

음모 이론에 입각한 이야기는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흐름을 놓칠 정도로 다소 복잡하다. 그러나 국익을 위해 불법적인 무력 행사도 서슴지 않는 미국의 세계 경영 방법과 현 국제 정세의 지형을 한눈에 꿰뚫을 수 있게 한다.

작지만 단단한 영화-할리우드의 새 경향

두 영화는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며 자칫 산만해질 수 있는 이야기를 자연스런 이음매로 엮어간다. 시나리오 작가 출신 감독의 꼼꼼한 연출력 덕분이다. ‘크래쉬’의 폴 해기스 감독은 지난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각본을 담당했다. ‘시리아나’의 스티븐 개건 감독은 마약을 매개로 연결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관계도를 그렸던 ‘트래픽’으로 2001년 아카데미 각색상을 받았다.

여러 스타 배우들이 대본에 반해 개런티와는 상관없이 자진해서 출연한 점도 두 영화의 공통분모다. ‘크래쉬’의 제작비는 650만 달러(약 65억원). 편당 1,500만 달러(약 150억원)를 상회하는 산드라 불록의 평소 몸값에도 한참 못 미치는 액수다. 맷 딜런, 돈 치들, 탠디 뉴튼 등 중견 연기자도 돈에 구애 받지 않고 출연 결정을 내렸다.

‘시리아나’의 제작비는 5,000만 달러(약 500억원)로 ‘크래쉬’에 비해 큰 몸집을 자랑하지만, 조지 클루니, 멧 데이먼, 윌리엄 허트 등 유명배우들이 출연한 영화치고는 저예산에 해당한다.

적은 제작비에다 민감하고 무거운 내용을 안고 있지만 두 영화는 완성도뿐만 아니라 상업적인 성공도 거두었다. ‘크래쉬’는 전 세계에서 9,000만 달러(약 900억원)를, ‘시리아나’는 8,000만 달러(80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두 영화의 성공은 사회 현실을 직시하는, 작지만 단단한 영화가 할리우드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