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우리 언니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우리 언니

입력
2006.03.29 00:00
0 0

언니 전화를 받았다. “전화 받네!” 대뜸 기쁜 목소리다. “어제 한 삼십 분 떠들었는데 또 샤프 버튼을 안 누르고 그냥 끊었어.” “음, 들었어. 근데 앞으로는 오 분 이상 남기지 마. 더 이상 녹음이 안 되는 거 같아. 말하는 도중에 잘렸어.”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언니는 “그래? 들었니? 버튼 안 눌렀는데?” 횡재라도 한 기색이다.

언니는 미국에 산다. 종종 내 전화사서함에 대고 한 시간쯤 말한 뒤 그냥 끊어 꽝으로 만든다. 비싼 돈 들여 혼잣말한 셈이다. 두 아들을 헐뜯기에 여념 없는 언니, 그러나 목소리가 밝다. 큰아이가 5월에 대학을 졸업하게 된 게 대견한가 보다. 이 애가 대학에 입학한 해에 형부가 돌아가셨다.

“며칠 전에 성묘 갔었는데, 무슨 생각을 곰곰이 하더라. 뒤에서 그 모습을 한참 봤어.” 가슴이 뭉클했다. “너, 진짜 미국에 올 수 없니? 너무너무 보고 싶다.” “비자 없어진다는 말이 있던데, 그때나 갈게.” “그게 언제? 너, 오기 싫은 거지?” 언니는 슬픈 목소리로 “나중에 너랑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너 들들 볶으려는 거 아니야. 진짜 너랑 살고 싶어.” 들들 볶는 줄은 아는군. 나는 웃었다.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