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3ㆍ1절 골프 파동’이 벌어졌을 때 나온 글 중에서 내가 가장 주목했던 건 문화평론가 천정환씨가 어느 시사주간지에 쓴 글이었다. 천씨는 그 글에서 “그 나이에, 그 지위에 민주화 운동 출신들은 골프 좀 하면 안 되나?”라는 질문을 던져 놓고, “안 된다”가 정답이라고 말했다.
뜻밖이었다. 골프를 치지 않고 영원히 칠 뜻이 없는 사람이라도 노무현 정권과 언론이 모처럼 뜻이 맞아 주도하는 ‘골프 광풍’에 주눅이 들어 있는 마당에 감히 그런 주장을 하다니 말이다. 천씨는 “만약 ‘된다’고 생각하면 ‘양극화 해소’니 ‘참여’니 하는 거짓말을 그만두거나 정치를 때려치우면 된다.
또한 더 이상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과거를 상징 자본으로 내세우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게 무슨 말일까? 생각하고 또 생각해본 끝에 나는 ‘개혁 상업주의’를 비판하는 걸로 해석했다. 물론 그건 천씨의 뜻이 아닐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읽었다는 것이다.
●선거 앞두고 갑자기 양극화 제기
요즘 노무현 정권이 ‘양극화’ 이슈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노 정권이 양극화 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비판해온 사람으로서 반겨야 마땅하겠건만 그럴 수 없는 게 안타깝다. 디지털 시대엔 기억력 좋은 것도 죄인가? 노 정권은 거의 3년 내내 경제에 대해 낙관론만 역설해왔다.
야당과 언론의 악의적인 비판일망정, 경제를 걱정하는 목소리에 대해 성의껏 답하면 좋겠건만 노 정권은 단 한 번도 그러질 않았다. ‘발목잡기’로 간주하면서 역공만 취하느라 바빴다. 그러다 갑자기 지방선거를 앞두고 양극화 이슈를 들고 나왔다. 자기 성찰의 말은 한 마디도 없고 또 남 탓 하기에만 바쁘다. 편 가르기 냄새도 진하게 풍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다.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했더니 “무조건 이기고 봐야 한다”고 했다. 핵심을 찌르는 말이었다. 노 정권도 “이겨야 개혁도 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승자가 전리품을 독식하는 구조를 바꾸는 게 곧 개혁이라는 생각에까진 이르지 못했다. 그래서 개혁은 늘 사생결단의 전쟁이 되니, 그런 식으로 도대체 뭘 이룰 수 있을지 의문이다.
좋다. 무슨 동기에서 비롯됐건 양극화에 신경을 쓴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그게 단지 ‘제도’와 ‘정책’만의 문제일까? 기부를 습관화하고 상부상조하는 정신을 기르고 소외된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삶의 자세’와는 전혀 무관한 것일까?
‘삶의 자세’에 관한 한 노 정권 고위 인사들은 보수세력과 아무런 차별성이 없다. 봉급을 고스란히 저축하는 것에서부터 골프에 빠져드는 것에 이르기까지 똑같은 ‘상류층’일 뿐이다.
똑같은 민주화운동을 했어도 좋은 학교를 못 나오고 변호사 자격증이 없어 패가망신했거나 생존경쟁에서 낙오한 이름 모를 수많은 동료들과 민중에 대한 부채의식도 없는 것 같다. 다들 자기 잘나서 그 자리에 오른 걸로 생각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운동권 출신 고위 공직자가 특권의식을 만끽하고 상류층 라이프스타일에 푹 빠져 살더라도 그들이 개혁ㆍ진보적 가치를 정치상품으로 이용하는 건 개혁ㆍ진보에 도움이 되지 않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겠다. 즉, 그들은 자신의 부귀영화나 인정욕구 충족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도 사회적으론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뜻이겠다.
●개혁 앞세운 또다른 상류층 모습
그러나 바로 그게 착각이다. 개혁을 일신의 영달을 위한 상품으로 활용하는 ‘개혁 상업주의’는 좋은 점도 있지만, 과유불급이다. 개혁 상업주의가 개혁의 주요 방법론이 되면 신뢰가 죽는다.
운동 경력으로 고위 공직에 올라 개혁을 외치는 이들은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보수세력의 발목잡기로만 보려고 한다. 이 또한 착각이다. 그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건 인간적 불신과 환멸이다. 이는 이념과 정치적 성향은 물론 실용적 셈법을 초월하는 것이다.
전북대 신방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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